7. 역사로서의 성서(3)
역사를 기록한 어느 문서든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모든 문서들은 선택적이고 이념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에 기록된 오늘날의 역사책들은 온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서 또한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자료들과 기록들을 참고하여 기록된 부분이 상당히 많이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 여호와의 전쟁기(민수기 21:14)
- 야살의 책(여호수아 10:13; 사무엘하 1:18)
- 솔로몬의 실록(열왕기상 11:41)
-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열왕기상 14:19)
- 유다 왕 역대지략(열왕기상 14:29)
- 언약책(열왕기하 23:2)
- 이스라엘 왕조실록(역대상 9:1)
- 다윗 왕의 역대 지략(역대상 27:24)
- 선견자 사무엘의 글, 선지자 나단의 글, 선견자 갓의 글(역대상 29:29)
- 나단의 글, 잇도의 책(역대하 9:29)
-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역대하 12:15)
- 열왕기 주석(역대하 24:27)
-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역대하 27:7)
-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역대하 32:32)
- 이스라엘 왕들의 행장(역대하 33:18)
- 호새의 사기(역대하 33:19)
-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대하 34:14)
- 잇도의 주석책(역대하 13:22)
- 예후의 글(역대하 20:34)
-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역대하 26:22), 이사야의 묵시 책(역대하 32:32)
무엇보다 성서 자체의 내용에서 이스라엘 왕조의 내분과 쿠데타, 왕들의 실책, 지배 엘리트들의 만용과 죄악, 주변 나라의 침략과 굴복 등 부끄러운 사실들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역사적 객관성을 보증합니다.
기원전 8세기(특히 살만에셀 3세) 아시리아의 다양한 비문과 실록들은 성서의 역사성을 확증하는데 비교할 자료가 됩니다. 1 그런데 아시리아 왕궁 문서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나 그 자료들이 역사에 대한 매우 부분적인 그림만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르곤 2세(기원전 721-705)의 실록에서 713년 아스돗에 대한 군사 공격을 언급하지만 이 전쟁에 유다가 개입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유다 왕국의 개입은 다른 사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살만에셀인가 사르곤인가
이것보다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721년에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를 정복한 왕이 누구인가하는 것입니다.
성서, 아시리아 기록, 바벨론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 사르곤 2세의 기록에는 자신이 사마리아를 정복했다고 기록합니다. 2
“내 지배 초기에 내가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시를 <도시를 포위하여 점령했다.> 내게 승리를 주신 <신을 위해......> 내가 포로로 <거주민 27,290명을> 잡아왔고......”
그런데 열왕기하 17:1-6에서는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함락하였다고 기록합니다(열왕기하 17: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바벨론 연대기에는 사마리아를 정복한 인물이 살만에셀 5세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
“테벳월 25일 살만에셀이 아시리아와 아카드에서 왕좌에 올랐다. 그는 사마리아(사바라인)을 파괴했다. 제 5년: 살만에셀이 테벳월에 죽다. 살만에셀이 5년 동안 아카드와 아시리아를 다스리다.”
이 사건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많은 논쟁이 있었으나 정확하게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점은 사르곤 2세의 비문과 성경이 증거의 전부였던 시절에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사르곤의 기록이 ‘객관적’인 역사이고, 살만에셀 5세가 사마리아를 정복했다는 열왕기하 17:1-6이 ‘오류’라고 주장하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바벨론의 연대기에도 성서와 마찬가지로 살만에셀 5세가 사마리아를 정복했다고 기록되어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결론이 내려지게 됩니다. 곧 성서와 바벨론 연대기는 살만에셀 5세, 아시리아 실록은 사르곤 2세가 사마리아를 정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디글랏 빌레셀의 아들 살만에셀 5세(Shalmaneser V, 726-722)를 쿠데타를 일으킨 사르곤(Sargon II)이 제거하였기에 사르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록하였을 수도 있는데, 명확히 결론내릴 수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성서 기록의 역사성을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는 관점은 다른 고대 근동 역사 기록과의 비교 분석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7세기 초에 있었던 쿠에(Que)와 틸-가림무(Til-Garimmu)에 대한 산헤립의 공격은 후대에 그의 왕조실록에서 삭제되는데, 이는 산헤립이 그 원정을 직접 이끌지 않았거나, 그 원정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너무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전쟁이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실록’들도 왕의 업적을 기념하고 백성들이 왕권에 대해 존경심을 갖도록 의도된 기록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들의 기념 토판, 원통, 진흙 실린더, 오벨리스크, 석비, 궁이나 성전의 벽의 기록물 등은 왕권을 찬양하는데 기여합니다.
아시리아의 문서뿐만 아니라 이집트, 히타이트, 모압 등의 문서들도 객관적인 역사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지닙니다. 이런 문서들 또한 과장, 왜곡의 방식으로 선택적이고 이념적인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대근동 기록과 성서
성경과 비교 대조하는 다른 나라의 문서 또한 온전한 객관성을 띠고 있지는 못합니다. 성경 이외의 문서들도 구약 성서처럼 이념적인 성향을 지니며 그들의 역사적 관점 또한 주관적이고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대외관계사에 대한 구체적 사료들은 주로 전쟁 이후 아시리아의 일명 ‘왕의 비문’에 의존합니다. 바벨론의 ‘연대기’(Babylonian Chronicles)는 아시리아의 ‘왕의 비문’처럼 구체적인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이를테면, 바벨론 사료는 아시리아처럼 전쟁서술에 있어 원인, 경과, 결과 등을 담은 아시리아의 정책을 탐구할 기초가 될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겨우 전쟁의 발단 그리고 간략한 결과서술 정도에 그치는 탓에 ‘사실’(historical facts)에 대한 접근은 승자의 관점을 지니고 전쟁책임을 일방적으로 바벨론에 전가하는 아시리아 측의 기록에 치우쳐야 하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객관적인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히타이트 역사 서술에도 적용됩니다. 오늘날 가장 많이 남아있는 히타이트의 문서들은 히타이트의 수도인 하투사(Hattusa)가 멸망하기 직전인 100년 동안, 곧 13세기에 작성된 것들입니다. 5 그런데 동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신들이 인간 역사에 긍정적으로든지 부정적으로든지 개입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들은 언제나 역사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제공하고 히타이트 역사의 기록자들은 초기의 히타이트 왕들과 그들의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실수와 내면적 불화 등은 무시합니다. 또한 히타이트 문서를 뒷받침할 외부적 자료가 없기에 오늘날 학자들은 언제나 ‘누구에 의한 역사 재구성인가’를 늘 신경 써야 합니다.
아무리 회의적인 학자라 해도 성서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6 왜냐하면 성서는 자세하고 개연성 있는 역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사상과 관습이 성서에서 유추되기도 하며,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다른 자료에서는 얻을 수 없는 통찰을 제공해줍니다. 이를테면,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위 계승에 대한 아시리아의 간섭, 아시리아의 군사 원정 같은 이스라엘에게 불리한 기록들이 성서와 메소포타미아 사료를 통해 연구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는 다른 시리아-팔레스타인 국가들에게서는 얻을 수가 없는 것들로 성서가 매우 객관적인 시각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합니다.
이제 세 번째로 역사로서의 성서를 이해하는 바른 시각을 살펴보겠습니다.
- Iain Provan, et al.,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3), 144. [본문으로]
- James B. Pritchard, 「고대근동문학 선집」, 김구원 외 4인 역 (서울: CLC, 2016), 527. [본문으로]
- 김태훈 (2003). 앗시리아 역사문서와 사마리아의 함락. 구약논단, 1(15), 195-222. [본문으로]
- 손태창. "신 아시리아 제국 후기에 있어 대 바빌로니아 정책과 그 문제점 : 기원전 745-627." 서양고대사연구 38.- (2014): 7-35. [본문으로]
- Marc Van De Mieroop, 「고대 근동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0), 233-234. [본문으로]
- Marc Van De Mieroop, 「고대 근동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0), 32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