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글자의 그림자: 역사로서의 성서(4)
성서의 역사를 해석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현대 역사서술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역사편찬은 개인 기록물이기보다는 공동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후대 기록자에 의해 재편집되고 보충됩니다.
둘째, 현대 역사가들과 달리, 고대 저자는 자신의 자료를 결코 평가하거나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기록한 많은 부분이 실제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 구약 역사편찬에서 작용하는 인과율의 법칙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서의 역사는 케리그마적 역사, 곧 ‘설교된 역사’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뒤에서 ‘신학으로서의 성서’부분에서 다루겠습니다. 1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구약 성서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역사로서의 성서는 객관적인 성서 읽기와 연결됩니다. 성서의 배경, 이스라엘과 주변 나라들의 관계,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 등을 밝혀내는 성서 읽기입니다.
현대 학문의 역사 서술의 의미 안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모두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과거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서 전승은 지속적으로 어떤 사회 내에서 계속 이어져 나가는 사회·정치적인 동맹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추이를 알려주기 위해서 채택되고, 다시 읽어지고, 다시 작업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서의 이야기들을 역사로서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역사가들이 역사적, 문학적, 인류학적, 그리고 사회학적인 증거로부터 이끌어 낸 합당한 논의에 근거하여 상호 간의 연결망을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역사가들은 완벽하게 객관적인 확실성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사회적인 연구 성과와 전승 문화를 읽어 나가는 방법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일까요?
역사를 보호하려는 역사가와의 관련성은 무엇이고, 이런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본문을 읽고 받아들이는 것이나 이해하는 정도는 성서를 읽는 이들의 사회적 지위, 인종, 나이, 정치적 견해 등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서의 역사를 해석할 때 많은 어려움을 줍니다. 성서 이야기의 기록은 의사소통의 행위이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힘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자기 문화 속에 있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성서 본문의 주관화와 객관화 작업을 동시에 실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서가 어떤 역사 작품인가를 이야기할 때, 성서 히브리어에는 ‘역사’(history)라는 낱말 자체가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논리구조를 가진 역사를 성서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으며 오늘날의 기준으로 성서의 역사성을 논하는 것은 조심해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서의 역사성은 고대 근동의 어떤 기록물보다 뛰어납니다. 고대 근동에서 유일하게 성서 같은 역사 기록에 근접하는 것은 아시리아 산헤립의 ‘프리즘 비문’같은 왕의 연대기로, 이것은 왕들이 정복한 지명과 노획품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라기보다는 기록이나 목록에 불과합니다. 광범위한 국가 역사의 첫 작품으로는 성서가 단연 처음일 것입니다. 2
성서 속에 숨어있는 역사
성서는 최소한 서로 다른 두 부류의 독자층을 가집니다.
첫째는 본문이 처음에 말을 걸고 있는 대상으로서 기록 당시의 독자, 곧 성서가 기록될 때의 독자입니다.
둘째는 오늘날의 독자입니다.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고대의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이야기들과 교차하고 있음을 말해주는데, 고대의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역사를(삶과 공동체를) 형성시키고 발전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해석 행위는 본문 자체의 상황뿐만 아니라 독자의 상황까지도 반영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 곧 사회, 문화, 민족, 성(性), 계층 등을 완전히 떠난 완벽한 ‘객관적인’ 성서 읽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것도 저것도 모두 옳다(또는 틀리다)는 무비판적인 상대주의로 여기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성서 저자는 역사를 구성하는 저력과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관념을 말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역사로서의 성서를 구성했으며 그렇기에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나 인물들이 몇 가지 섞여있다고 해도 이런 요소들이 독자들을 ‘그릇된 믿음’으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사실 성서에서 그릇된 믿음으로 빠지는 것은 성서 저자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독자들의 무책임한 성서읽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독자들은 성서 기자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채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기록된 자료들에만 의존하는 선입관과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보는 것으로는 성서의 ‘역사’를 온전히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건 문서에만 머물게 되며, 성서가 보여주는 광대한 세계관과 역사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객관적 성서 읽기
우리는 특별히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성서를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주관적인 성서 읽기가 중요하고,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완벽한 객관성을 얻을 수 없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정하고 진실하게 성서를 읽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샌드멜의 ‘편한 이론’에 따르면, 신학적이건 단지 개인적이건 간에 두 개의 상반된 주장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사실이나 진실을 땀 흘려 찾기 보다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편한 이론’입니다.
성서의 독자들 모두 역사가로서 사회적인 연구 성과와 전승 공동체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심층을 간파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서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해서 ‘성서의 역사’를 읽어내야 합니다. 성서는 왕과 같은 통치자들, 권력자들, 남자들, 어른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속에 숨어있는 소외된 자들, 여성들, 일반 백성들을 읽어내야 합니다. 그들이 곧 역사 속의 ‘실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왕권을 둘러싼 정치권력의 암투, 주변국과의 갈등, 엘리트들의 백성 억압의 사건 속에서 ‘궁극적인 역사의 견해’를 발견하는 것이 역사로서의 성서를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고대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정황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역사학적인 재구성을 통해 전해져야 합니다.
성서는 역사가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가져다주고 독자들에게 감동과 신앙을 전해주며, 역사 속에 활동하는 신 여호와의 실제적인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순과 혼란도 포함합니다. 기록된 자료들(성서 본문)은 기록되지 않은 자료들(성서 외의 자료들)과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사건들을 기록된 성서 본문들이 서로 어긋나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역사가가 기록하지 않은, 기록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밝혀내기 위해서 역사의 사회적인 연구 성과들을 조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기록된 역사이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고고학을 통해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난 뒤에야 성서 본문의 주관적 성서 읽기(문학으로서의 성서)와 객관적 성서읽기(역사로서의 성서)의 기능을 통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 저자들이 역사의 중대성을 항상 생각했었다는 사실은 또한 자신들의 서술했던 다양한 본문들에 대하여 역사적 배경을 제공하려고 했던 그들의 노력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성서 전체의 저작과 편집에 있어서 역사의 구심점은 풍부한 역사 해설과 언급, 역사적 배경, 역사 구조와 상황의 정교한 사용에도 녹아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성서 저자들의 역사의식과 목적을 잘 드러내줍니다.
글자의 그림자
성서 저자들과 편집자들은 객관적인 역사적 자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료들을 가지고 아무런 감동이나 영감 없이 무의미하게 성서를 써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야기들을 단지 사실적으로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신 여호와에 대한 신앙과 체험을 후대에도 계속 전승하기 위한 역사적인 책임과 의무감을 가지고 성서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최고의 역사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 여호와를 만나고 경험한 삶의 기적적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활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사화 된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경, 여호수아, 열왕기서 등에 있는 고대 이스라엘에 관한 이야기들은 역사로서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비평 없이 읽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4 오늘날 역사화 된 신앙이 객관적인 역사로서의 가치를 지니려면 신앙의 껍질(신앙 안에서의 언어, 느낌, 감동, 종교적 용어 등)을 벗겨내는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며 이런 작업은 성서 읽기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구약 성서 전체는 분명히 후대의 편집과정을 거치는 오랜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5 대부분의 역사가 그렇듯 성서의 기록 또한 왕권, 남성, 지배엘리트 등의 사회정치적 상층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전승되면서 몇 번의 편집 과정이 있었습니다. 객관적 성서읽기는 '글자의 그림자'에 가려진 집단들의 의도와 사상을 읽어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고대의 역사 서술은 결코 순수한 학문적 관심이나 어떤 객관적인 보도를 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자료들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 기술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고대 오리엔트 역사기술의 특징이 ‘삶의 자리’, 문학 장르, 정치적 의도, 종교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배경과 관련해 연구됩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목적에서 쓰였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문헌 속에 들어있는 역사적 정보가 올바르지 않거나 왜곡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사건들을 어떤 특정한 빛 아래 비춰보고 해석하고 선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6
그렇기에 구약성서를 오늘날의 역사 개념을 갖고 읽으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것은 성서의 역사성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인들의 역사 기술 의식과 현대인들의 역사 의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현대에는 어떤 기록물의 객관성, 각주, 참고 문헌 등을 매우 중요시하는 추세인데 고대 기록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의 문서들은 전반적인 맥락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집필된 것으로, 그 맥락을 모르는 우리 현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역사가를 포함하여 문학 작품의 저자들은 사건과 인물에 대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이야기를 제시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태에 대하여 특정한 견해를 지지하면서 관중(독자)에게 사건과 인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한다." 7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구약성서는 고대 근동의 역사기록물과 다를까요?
놀라운 것은, 성서가 오랜 기간의 편집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객관적인 시각을 계속 유지하였으며 사회의 주요 계층들의 허물과 죄악을 다루는 것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서와 예언서에서 발견되는 왕, 관리, 종교 지도자, 재판관들의 죄악상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고대에는 글자를 읽고 쓰는 것이 왕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구약 성서도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왕의 권력을 견제, 왕실의 죄악을 책망, 왕의 죄를 그대로 기록하는 점에서 성서의 객관성이 잘 드러납니다. 여러 사람의 오랜 편집 과정이 있었음에도 여호와의 공평과 정의는 온전하게 남았는데, 이것이 성서의 역사성의 핵심이며 역사로서의 성서 속에 흐르는 신의 계시입니다. 편집자들의 왜곡된 시각과 시도가 있었음에도, 신 여호와는 성서를 통해 당신의 통치 원리를 분명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신 여호와가 성서 기록을 주관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신의 계시를 온전히 담은 사람의 기록물입니다.
사진 www.freepik.com/photos/background'>Background
- Richard D. Nelson, 「IBT 구약학입문 시리즈 2: 역사서」, 이윤경 역 (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15), 31-33. [본문으로]
- Richard Elliott Friedman, 「누가 성서를 기록했는가」, 이사야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8), 308. [본문으로]
- Lester L. Grabbe, 「고대 이스라엘 역사」, 류광현 외 1인 역, (서울: CLC, 2012), 58. [본문으로]
- William G. Dever, What Did the Biblical Writers Know and When Did They Know It?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1), 226. [본문으로]
- 모세(신명기 34:10)와 요시야 왕에 대한 평가(열왕기하 23:25), 성서 본문 여러 곳에서 보이는 ‘오늘날까지~하더라’는 편집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역대기상 1-9장은 포로기가 끝나고 귀환한 자들의 명단이며 10장 이후부터는 사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전혀 다른 두 시기의 글이 편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편집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잠언 25:1.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 [본문으로]
- Klaas R. Veenhof, 「고대 오리엔트 역사」, 배희숙 역 (서울: 한국문화사, 2015), 8. [본문으로]
- Thomas R. Martin, 「고대 그리스사」, 이종인 역 (서울: 책과 함께, 2015), 2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