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구약 일반

10. 성서, 교회, 사회

에르고니아 2020. 10. 3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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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교회, 사회

교회는 성서를 받아들이고 오늘날까지 보존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남겨주었습니다.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데 있어, 고대 이스라엘에게 첫 번째로 주어진 것과 교회에게 두 번째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는 성서의 해석이 오늘날 교회에 적용 가능해야한다는 말입니다.[각주:1] 성서를 열린 마음과 정직한 태도로 읽는 것은 특정한 교리나 교회(교단)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신학을 왜곡시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성서가 아무리 시대를 초월한 진리라 하더라도, 오늘날 교회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합니다. 성서의 본문을 글자 그대로받아들이려는 시도는 정직한 것이 아니라 무모한 것이며 이는 때때로 교회의 신앙에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낼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성서 본분을 신학적으로 해석하는데 여러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종, 성별, 직업, 경제·정치적 이해관계 등이 다양하며 이는 같은 성서 본문을 읽는다 해도 자신이 속한 교회에 따라 신학적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상황을 고려한 해석은 구약성서 본문과 그 본문이 증언하는 하나님과 참된 만남을 가능하게 하며 그러한 만남을 통해 신앙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구약성서를 신학적으로 읽는 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지만, 이것을 진공상태에서 읽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사회인이며, 교회는 사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나 홀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닙니다. 성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안에 있고 또 세상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의 명령은 세상을 떠나 고고한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치열하게 살라는 명령입니다. 그렇기에 신학은 성서의 사회화이기도 합니다. 성서는 교회의 달콤한 사탕이 아닙니다. 성서의 사회화는 성서의 말씀이 단지 교회 공동체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의 공공선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신학이 사회와 연대하지 않을 때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는 자기들만의 공동체에 머물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세상의 모든 행동들을 기독교적으로 도덕화하거나, 기독교 국가화를 지향한 것은 아닙니다. 신학의 사회화는 신학의 사회적 책임에 가깝습니다. 교회는 여호와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데 참여하도록, 그리고 사회를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구약성서를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를 바르게 읽고, 해석하고, 선포하는 세속적인 배경을 반드시 고려해야합니다.

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개인의 경건을 위해서나 제도적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성서를 적절히 해석해서 읽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인종, 문화, , 계층 간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는 교회간의 갈등과 사회 간의 충돌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과 위기는 구약성서 안에서 먼저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신학으로서의 성서는 세속적 위기들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하며, 신 여호와의 창조물인 온 우주와 인류가 회복되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구약성서는 단순히 고대 종교공동체의 문헌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의 권력 세계에서 인류의 삶과 죽음 가운데서 신 여호와의 정의와 구원 사역을 나타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 한복판에서 여호와의 뜻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읽기와 살아내기

성서는 이 백성, 이 공동체, 이 사회,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특수성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서는 단순히 공동체와는 동떨어져서 한사람씩으로 나뉜 개개인이 고결한 삶을 살도록 또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종교적인 도덕 교훈 해설집이 아닙니다. 개개인의 영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다보면 하나님은 한낱 개인의 수호천사에 머물러버리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신 여호와의 목표는 의로운 개인들을 생산해내는 작업소를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 속에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반영하는 공의와 평화와 생명과 사랑이라는 속성을 실현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데 있습니다. 인류와 더 넓게는 온 우주의 생명과 평화, 정의와 사랑은 자신의 피조세계를 향한 신()의 원래 목적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고 역사의 주관자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이 본문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이 말씀을 통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먼저 성서가 기록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한가운데 서서 귀를 기울이고 난 뒤에, 당시의 사회 속에서는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인류 사회 전체에 적용해야할 사회적 함의들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하나님의 공동체(좁게 본다면 교회) 가운데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평안 그리고 사회적 위치와 행동 지침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위의 작업들이 충분히 선행되고 나면 개개인에 대한 신앙의 결단과 행동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서가 문학으로서의 감동과 역사로서의 사실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이 둘과 함께 신학으로서의 성서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여호와 신앙에 의한 신앙인들의 사회화를 강력하고도 집요하게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치열한 성서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를 읽은 대로 살아내기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눈으로 보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 과제는 앞으로도 영원히 모든 인류에게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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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lter Brueggemann et al., 「구약신학과의 만남」, 차준희 역 (서울: 프리칭아카데미, 2007), 5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