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라져버린 예수
예수의 승천
예수님이 승천하던 날 제자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져들었다. 마냥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행 1:11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과 함께 수많은 기적과 기이한 일을 행한 스승이 하늘로 사라졌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도 스승은 이 땅에 있었다. 무덤에 묻혀있을 때도 비록 죽은 몸이지만 스승은 이 땅에 있었다. 부활을 했을 때, 제자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예수는 승천해버렸다.
제자들은 한동안 멍하니 빈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스승 예수는 왜 떠나버렸을까?
사실 스승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요 16:7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예수가 떠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인가? 예수는 병든 자를 고쳤고, 귀신을 내쫗으며, 풍랑도 잔잔하게 하였다. 수천 명을 먹이고,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 같은 유능한 종교 지도자들과 멋진 토론을 벌였다.
능력과 권세와 영광이 차고 넘치는 스승이 떠나는 것이 어떻게 제자들에게 유익이란 말인가?
예수의 몸인 교회
우리는 그 해답을 바로 우리 자신, 곧 교회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땅에 새로운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하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주하는 곳으로서, 예수의 사역을 대신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에게 치유와 회복, 은혜와 자비를 행한다.
예수시대의 사람들에게 신은 언제 저 높은 곳 하늘에 있었다. 하늘이 신의 집이고 땅은 비천한 사람들의 집이었기에 건너갈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곳에 자신들이 경배하는 신이 있었다. 여러 민족이 저마다의 다양한 신들을 믿었지만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하늘의 신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것이 곧 땅에 있는 여러 현상들의 원인이 된다는 믿음이었다. 최고의 신 제우스가 하늘에서 화를 내면 땅에는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고가도로 위에서 돌멩이를 던져본 것이 있는가? 아이들에게는 장난이지만 달리는 차에게는 재앙이었듯, 신들이라는게 지상에 재앙을 내리기 일쑤였다.
하늘에서 그러면 땅에서도 그렇게 된다는 것이 예수 시대의 신앙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하신다.
마 18:18-20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눅 10:16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땅에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기뻐한다. 두 사람이 합심해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 제자들을 배척하면 예수를 배척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를 움직인다.
왜 예수는 이런 권세를 교회에게 우리같이 연약한 인간에게 주셨을까? 당신의 능력이 무한함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사람에게 영광스럽지만 참으로 위험한 사역을 위임하셨을까?
예수에 대한 믿음
예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해 질 때, 그는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그 믿음이 얼마나 헛된 믿음이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승천하심으로 당신이 우리 에게 보여주었던 모든 기적과 이적들을 우리 스스로 실천하고 실행해야 함을 의무로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일들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분이 진정으로 바라신 ‘믿음’이다.
마 25:35-46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8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헬, 또는 침례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 땅에 버려두고 승천하신 까닭이요, 교회의 존재이유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공통 의무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하고 거룩한 일을 우리에게 위임하셨다. 우리에게 예수님과 같은 능력은 없지만, 그분의 이름으로 그분의 사역을 내낼 수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이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가 과연 올바로 예수가 맡긴 사역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자신은 없다. 그런데 그것은 초기 교회의 문제이기도 했다. 4세기 어거스틴은 답답하기만 한 교회에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구름이 천둥을 몰고 오듯 주님의 전이 이제 온 세상에 지어질 판인데 이 개구리떼는 그저 연못에 옹종거리고 모여 개굴개굴하면서 ‘우리만 진정한 교인이다!’라며 앉아있다”고
예수보다 적은 능력으로 큰 기적을
그러나 비록 부족하기는 해도 우리 역시 예수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딱지를 뒤통수에 붙이고 일터에서 일하며,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이 녹아들어가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 치유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수많은 이들이 의사, 간호사, 환경학자, 정치가, 그리고 선생님과 엄마와 아빠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오지 않았는가!
예수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다. 그분이 떠난 이 땅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예수의 사역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땀 흘려 해내면 된다. 그것이 믿음이고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