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수아의 선언

여호수아의 선언
여호수아 24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모세가 출애굽은 하고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정착하는데 성공했다. 많은 민족들이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는데 반대하였지만 슬기롭고 용맹하게 정착했다. 그리고 12지파는 땅을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는 24장에서 세겜에 온 이스라엘을 모아놓고 마지막 연설을 한다.
세겜의 뜻은 언덕으로 예루살렘 북방 약 65킬로미터에 위치한 곳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정착한 곳에 있다. 창세기 12:8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다.
창세기 12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23장을 보면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어 이제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전투와 전쟁을 치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분오열할 때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면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여호수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던 세겜에서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연설을 하는 여호수아는 감개무량하였을 것이다.
그렇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것을 내 마음의 밭에 비유해보면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내가 목사가 된 것이 신앙의 걸림돌이 되었다
이제는 설교 말씀을 들어도 듣고 실천하고 은혜의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내가 들어줄테니, 듣고 평가해 줄게’라는 생각으로 말씀을 듣는다. 듣기보다는 평가한다. 받아들이기 보다는 판단한다. 은혜가 없다.
지난날 어리숙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던 순종의 마음은 사라졌다. 배웠기에 경력이 쌓였기에 순수함이 영악함으로 변질되었다. 좋은 땅이었는데 이제는 돌밭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문제는 나의 신앙이다.
이것은 내 마음의 밭이 돌같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옥토가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의 돌들을 겉어내고 쓴 뿌리를 뽑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럿이 바로 나와 내집인 여호와를 믿는다는 선포이고 다짐이다.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있다. 내 집안에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이 깃들인다.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의 신앙이 어떠하진 복을 받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제대로 믿고 잇는지가 중요하다. 비교하면 시기심과 질투가 내 신앙을 막아버린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가 이다.
영혼의 쟁기질
영혼의 쟁기질이 필요하다. 영혼의 흙을 뒤집어서 옛것은 걷어내고 새 흙을 올리고 딱딱해지고 물기없는 팍팍한 흙을 촉촉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슴의 씨앗이, 주님의 음성이, 내 손을 붙드심이 더해질 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영근다.
예레미야 4장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2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1)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히, 그
3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밭이 좋은 흙의 토양으로 바뀔려면 고통스런 쟁기질이 필요하다. 강고해지고 완악해지고 무표정해지고 지난 경험으로 무감각해진 영혼을 갈아엎는 작업이다. 파고들어오는 쟁깃날이 아무러 고통스러워도 이 과정은 피할 수 없다.
피하면 여전히 돌밭으로 남아있게 된다.
곡괭이가 내 마음을 파고 들면 너무 아프다. 속이 쓰리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나를 방어하고 자존심이라는 방패를 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다.
‘흥,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변하나’하는 마음은 주님의 쟁기질을 효과 없게 해버린다.
겸손(humility), 겸손한(humble) 이라는 영어는 ‘휴머스’(humus)라는 땅의 뜻에서 나왔다. 사람(human)을 뜻하는 휴먼도 그러하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곧 토양이 흙이고 흙이고 사람이라는 뜻과 같다. 그러니 우리는 태초부터 원래가 흙이고 밭이다.
흙은 겸손하다. 그런데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공, 영예, 교만을 좋아한다. 겸손하다는 말은 자신감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정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내 능력이나 지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찾는 그리스도인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의 곡괭이가 내 영혼을 파고 들 때 버티지 말자. 하나님을 제대로 믿게 될 것이다.
이제 거름과 비료, 빗물이 필요하다.
하나님 편에서도 우리를 도와 일하시니 곧 우리 삶에 주님의 은혜를 성령님의 도우심을 공급하신다. 이 거름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시고, 성서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신다. 무감각하게 성경을 넘기던 손이 갑자기 멈추면서 내 눈을 밝히는 말씀이 확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눈물이 핑돌며 기도하게 하신다. 그것이 내 영혼의 거름이고 비료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 나를 괴롭게하고, 내 의견을 무시하고, 나를 따돌리고, 내게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즐겁게하고, 그들의 신음소리가 무감각해진 사랑의 감정을 일깨운다.
이 과정은 쉽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시간이 걸리며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최상의 거름이란 하나님께서 영혼에 물 붓듯 부어주시는 성령의 기쁨이다.
우리가 우리 영혼의 토양을 갈고 경작하면 많은 빗물이 쏟아져 그 빗물이 식물의 뿌리에 잘 전달하게 된다.
내 삶에 찬양이 흐르게 하자. 찬양은 그저 노래가 아니다. 찬양은 기도이고 신앙고백이다. 내 영혼이 찬양의 뜻을 깨닫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찬양 가사에 마음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요즈음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하는 찬양이 입속에서 맴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것이 내 영혼과 머리를 맑게 한다.
성도님들은 어떤 찬양이 좋습니까?
또한 기도의 눈물이 빗물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한다. 눈물 없는 기도는 팍팍하다. 의미도 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독백에 불과하다. 팥 없는 찐빵이다.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을 때 하나님의 사랑으로 감격하고 싶다면 찬양과 기도를 하라. 그것이 내 영혼에 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체질에 맞는 추수
이사야서 28
23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 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 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 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작위인 더미, 아무렇게나 뭉쳐놓은 무더기로 여기시지 않고 우리의 체질과 성격에 따라 섬세하게 다룬신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분은 씨앗 하나하나의 잠재력, 성장의 양태, 각 씨앗이 최적으로 자랄수 있는 토양과 계절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내가 옥수수라면 옥수수에 어울리는 토양을 만드신다. 두렁과 물과 습기와 온도까지 세심하게 관리하신다. 하나님의 섬세한 관리를 받은 옥수수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돌보시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 옥수수는 벼와 같지 아니하며 장미꽃과도 다르다. 호두는 포도와 다르며, 사과는 딸기와 다르다. 배나무에서 감을 찾지 아니하시고 감나무에서는 참외를 바라지 않으신다.
나에게는 나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고 하나님은 그것을 존중하신다.
소회향은 줄기와 잎의 열매를 음식의 향료로 사용하는 작은 식물이다. 대회향은 그 씨를 으깨서 음식의 향료로 사용하는 작은 식물이다. 소회향은 대회향보다 조심해서 다루어야한다. 도리깨로 부수어야 하는 곡식도 있다. 콩과 같은 것은 도리깨로 내리쳐야 한다. 그러나 딸기같은 과일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우리도 그러하다. 어떤 이는 조심스럽게 주님께서 다루신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도리깨로 후드려 패야만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저 사람은 왜 하나님이 저렇게 조심스럽게 다루시지?라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하나님이 두둘겨 패실 수도 있다. 나는 콩이거나 심지어 호두일수도 있다.
가능하면 우리 모두 과일과 같이 부드러운 방법으로 하나님께 추수가 되었으면 한다.
나의 선언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수 많은 신들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하여 자신이 있었다. 참 신이시고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이끌어내신 여호와를 믿는다는 자부심이 신앙 고백으로 나온 것이다.
나와 내 집이 내 가정이 여호와를 믿음으로 복을 받자. 정말 복을 주시는지 하나님을 시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