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구약성서 읽기

3. 아브라함의 복

에르고니아 2020. 12. 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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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계약의 약속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와 맺은 계약은 제2성전, 곧 성전 재건의 포로 후기 시대에 시작되는 성서 유대교의 기간에 크게 돋보이게 된다. 더욱이 이 계약은 초기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누가복음에서 세례요한의 아버지가 부른 사가랴의 노래에서 나타난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1:72-75)

 

영원한 계약

노아 계약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계약은 영원한 계약으로 불린다. 이 계약이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하나님의 신실함 혹은 영원한 사랑-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직 "은혜로만의 계약”(sola gratia)이다. 이와는 달리 모세 계약은 은혜의 계약이지만 조건이 있는 계약이다(20). 모세 계약은 사람의 결단을 요청하고 사람의 자유로운 행동의 결정적 결과를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아브라함 계약은 사람의 허물과 죄에 영향을 받기 쉬운 백성들의 응답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영원히 지속하겠다는 하나님의 신실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아브라함 계약은 일방적이다.

 

이 계약의 특징은 창세기 17장에서 강조된다. 하나님은 영원한 계약으로 하나님의 계약을 체결하시기로 결심하신다. 이 계약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기반을 두어 영구히 설 것이다. 할례는 조건이 아니라 계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표시이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이 특별한 계약을 서술함에 있어서 제사문서에는 계약이라는 낱말이 처음 창세기 15:7-21에서 발견된다. 아브라함은 몇몇 동물을 잡고 그것을 둘로 쪼갠다. 그리고 하나님의 불이 쪼갠 동물들 사이로 지나간다. 이 때 아브라함은 잠들어 있었고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약속의 계약

이 계약의 특징은 의무 사항을 지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약속하신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에게 그의 고향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여기에서 3가지 약속이 주어진다. 첫째, 하나님은 그를 커다란 민족으로 만들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을 주실 것이다. 셋째, 이 백성을 통하여 이 땅의 모든 몰락하고 흩어진 가족에게 이 전해질 것이다. 아브람에게 한 약속은 하나님의 전 세계를 위한 목적이라는 지평선에서 보아야 한다.(4:10-25) “온 땅이 하나님께 속했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국가로 섬기게 하기 위하여(19:1-6; 벧전 2:4-5) 이 백성 이스라엘을 나의 보배로운 소유로 선택하셨다.

 

믿음과 의심

오늘날 때때로 참된 믿음이란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의심할 용기혹은 의심할 믿음을 가졌다.

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두 가지 약속에 의심을 보이는 두 이야기를 기록한다. 첫째, 그가 자녀가 없는데도 크게 번성할 것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15:1-6) 하나님의 말씀을 뒷받침할 실체적인 증거가 없다. 사라는 그에게 아들을 생산하지 못할 것같이 보였고 지금까지는 그의 늙은 종 엘리에셀이 그의 땅을 물려받기로 되어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 어느 날 그가 별들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이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하셨다. 이 때에 기독교 계통(4:16-25; 2:18-26를 보라)에서 많이 논의되고 있는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6)

 

이 믿음은 이성적인 주장이나 결정적인 증거에 의존하는 믿음이 아니라, 상관관계에서 이뤄지는 적당한 믿음이다. 이를테면 내 친구를 믿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친구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증거가 먼저 온 것이 아니고 믿음이 먼저다.

둘째,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은 또다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의심을 가진다. 그가 그것을 갖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15:8) 이 약속이 유효하다는 증거는 아주 빈약하며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에 땅은 강력한 가나안 도시국가의 아래에 있었고 모든 사회는 이집트 아래에 놓여 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들은 정치적, 사회적, 체제의 변방에서 살고 있는 체류자들이었다.

 

땅의 약속이 유효한가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질문하는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증거를 주시지 않고 당신의 약속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상한 계약 의식을 치루셨다. 오랫동안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들은 낯선 땅에서 유리하는 자”(14:33)였고 실제로는 수세기 동안 노예로 억압을 받았다.(15:13-17) 약속과 성취 사이의 오랜 기간 동안 백성들은 믿음으로만 살아야 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역사의 얽힌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사역을 이해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약속의 계약이 의무조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요구하신다. 계약은 아브라함의 성실과 책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강조된 것은 율법이 아닌 약속의 수여이다.

 

3중의 약속

창세기 17장은 구약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인 논설이다.

 

첫 번째 약속

아브라함과 사라는 수많은 후손이 있다. 사실 족장 이름에 대한 히브리어 말놀이로 보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17:4) 게다가 사라는 민족의 어머니가 되고 그에게서 백성들의 왕들이 나오리라”(17)는 약속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백성의 번성에 대한 이런 확신은 이스라엘이 황폐하고 미래가 없어 보이는 포로기 동안 한 예언적인 시에 의해 나중에 언급된다.

 

이사야서 51:1-2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찌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51:1-2)

 

두 번째 약속

이 계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백성과 특별한 관계가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엘 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너와 너를 이은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엘 샤다이가 백성과의 임재를 뜻하는 하나님의 적절한 이름을 밝히는 출애굽기 6:2-9의 제사문서의 구절을 미리 제시한다.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6:7)

 

이같이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개인 이름을 알고 그러므로 나와 당신과의 관계 안에 있기로 허락된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탄식시에서 처럼(116:4),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16:12-13)

 

세 번째 약속

아브라함 계약은 창세기 15:18-21에 이미 규정된 지리적 영역들인 과 근본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쓰인 낱말들은 공식적이고 법률적인 용어로 양도하는 것이다: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17:8; 48:4) 법률 용어에서 보면 영원한 계약은 영원한 토지 보유로 그 땅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계약은 고대 세계에서 널리 실시되었던 왕의 수여와 비슷하다. 이런 법적인 합의에서 기증자는 대개 과거의 충성을 인정하여 자산을 영구히 주겠다는 맹세에 자신을 일방적으로 얽어맨다. 그래서 이 경우 땅의 수여는 여호와의 맹세에 근거하고 아브라함의 과거의 충성을 인정하여 주어진 것이고 영원히 취소할 수 없는 양도이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특별한 의무 사항이 부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계약의 땅의 영역은 시편에서 강조되었다:

 

(105:7-11)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그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걸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에게 할당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첫째, 아브라함 계약은 사람의 행동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 의지에 근거한 영원한 계약이다.

둘째, 아브라함 계약은 계약 수령자의 덕이 아닌, 계약 체결자의 일반적인 주도에 근거한 은혜의 계약이다.

셋째, 아브라함 계약은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의 보증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할 것이며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서 섬기고 경배하는 백성으로 설 것에 대한 보증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헤세드)에 근거한 이 약속의 계약은 미래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백성들이 하나님 목적의 성취를 향해 움직일 때, 그들에게 확신을 준다. 개인적 입장, 혹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약속의 계약에는 구약 옛 전승의 이야기들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 걱정거리, 그리고 좌절감들이 분명히 있다. 상속자가 없거나(15:1-6), 이스라엘의 역자 조상의 나이가 아이를 갖는 시기를 지나갔을 때(18:1-15)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신뢰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이 미래에 가질 영토가 롯의 결정에 따라 어느 쪽으로 기울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을 때나(13:2-17), 또는 가나안 사람이 이 땅을 점령했을 때에도 땅에 대한 약속은 안전한가? 이삭을 바치는 것으로 자손에 대한 약속은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닌가?(22:1-18)

 

그러나 지금 옛 이야기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그들의 후손들과 맺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에 있어서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신앙의 문제점이나 염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엄중한 맹세로 보증된 하나님의 약속들은 믿을 만 하다. 모든 것이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확고하다.(42:9)

 

 

보편적인 것과 특별한 것

특별한 백성이 역사가 모든 창조와 모든 인간들의 참된 하나님을 드러냈다는 이 모순은 아브라함 계약에서 나타난다. 신학적으로 신비한 것은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이다. , 아브라함을 하나님 약속의 수령자로 부르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41:8)로 불렸고 그는 특별한 뜻에서는 하나님에 의해 알려졌다.(18:19) 그러나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보편적 목적의 일부분이다.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하나는 아브라함 백성을 통하여 모든 인류의 가족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고(12:3), 제사문서의 창세기 17장에서 재구성한 것처럼, 아브라함과 사라가 열국의 아버지어머니가 되는 것(17:5-6, 15-16) 나중에 조상들의 이야기를 장엄한 시로 표현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49:6)

 

하나님의 복은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진다. 다른 곳에는 눈을 돌리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것이 복의 시작이고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