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학

1. 과학과 종교의 3대 기념비적 논쟁

에르고니아 2020. 6. 1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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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변방에 있음을 알려준 코페르니쿠스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지 않음을 알려준 찰스 다윈
인간이 자신의 한정된 영역에서도 주인이 아님을 밝힌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와 태양계

중세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한 가지. 태양 및 다른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믿음

시편 113: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해 뜨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주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가 떠오른다또는 해가 진다는 말을 쓴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아시리아 에살핫돈의 종주 조약에도 나오는 말로써 이 구절은 고대에 일상적으로 쓴 문구이다.

해 뜨는데부터 해지는데 까지, 아시리아의 왕 에살핫돈이 왕과 주로 군림하는 모든 자들과;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과 이후에 살 모든 사람들과 맺은 조약이다.”

 

아리스토렐레스(BCE 384-322)

지구는 정지해있다. 탑에서 돌을 떨어뜨릴 때, 만약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회전한다면 돌이 서쪽으로 치우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로 밑에 떨어진다. 그러니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태양과 달이 행성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85?-165?)

중세 초기 가장 널리 받아들인 우주관은 2세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알마게스트

-지구는 우주의 중심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고 지구 주위를 회전

-회전은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그 중심 또한 또 다른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원래 히파르코스(Hipparechus)가 주창했던 이 중심론은 주전원’(epicycle) 곧 원 운동 위에 원 운동이 부여된다는 개념

 

행성과 항성의 움직임이 더 자세하게 관측되면서 원 운동 이론은 갈수록 복잡해짐

처음에는 주전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보충

15세기 말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루기 힘들어짐

그럼에도 천동설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16세기 지동설이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등장

 

 

지동설의 공헌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us, 1473-1543)

폴란드 학자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동심원을 그리며 회전한다고 주장

또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 뿐 만 아니라 자신을 축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관측 데이터를 모두 설명할 만큼 정교한 데이터가 부족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

덴마크 학자

1576-1592년 까지 행성 운동 정밀 관측

이 자료는 나중에 케플러가 수정한 태양계 모델의 토대

케플러는 브라헤의 조수

 

케플러

화성의 운행을 정밀하게 관측

행성이 태양 주위를 원형 궤도를 그리며 돈다고 가정하는 코페르니쿠스 모델로는 실제 관측된 화성의 운행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

1609, 화성 운행의 일반 원칙 두 가지를 밝혀냈다고 발표

첫 번째 원칙은 화성이 타원형 궤도로 회전하며, 이때 태양은 두 초점 중 하나라는 것

두 번째로 화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면적을 휩쓸고 지나간다.

두 원칙을 바탕으로 세 번째 원칙, 곧 행성의 주기 (행성이 태양 주위 궤도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의 제곱은 행성과 태양간 평균 거리의 세제곱에 정비례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그 정밀하고 단순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행성의 궤도가 원형이라는(천동설이 주장했듯이) 잘못된 가정 때문에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조차도 원을 완전한 도형이라고 생각하고 천체 운동에도 적용한 그리스 철학의 고전 철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

자연이 기형적인 기하학 구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함

 

1543,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이후, 17세기 초반의 20여 년간 케플러의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진 후에야 그 모델은 마침내 인정받음

 

성서학자들의 연구

첫째, 성서를 글자 그대로 해석.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루가 24시간씩 6일에 걸쳐 창조

둘째, 알레고리적 해석. 어떤 부분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

셋째, 조정의 개념에 입각한 접근법. 성서의 해석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볼 때,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방법. 여기서는 계시가 문화 및 인류학적 조건이 부여된 방법과 형태로 일어나므로 그 결과를 적절히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

창세기 도입부의 언어와 이미지는 초기 독자들의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것.

 

마틴 루터(1483-1546)

그는(코페르니쿠스)는 마치 움직이는 배나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은 정지해 있고 땅과 나무 같은 나머지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코페프니쿠스 이 바보가 천문학이라는 학문을 통째로 뒤엎어놓으려한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아가 멈춰라 하고 명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

 

칼뱅(1509-1564)

자연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활동을 적극 장려

(앞서 설명한) ‘조정의 관점에서 성경 직해주의를 타파

 

갈릴레오(1564-1642)와 천동설

가톨릭교회의 갈릴레오 유죄 판결

갈릴레오는 교황의 총신 치암폴리에게 높은 평가

그러나 치암폴리의 실각으로 갈릴레오도 신뢰 잃어

결국 적들의 공격에 유죄 선고

 

이 논쟁의 초점은 성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포스카리니(1524-1578), 갈멜 수도사

1615, ‘피타고라스학파와 코페르니쿠스의 의견에 관한 서한

태양 중심 모델이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

성경에서 부적절하고 부적당하다고 여겨질 만한 속성을 신이나 피조물에 부여하려면 다음 방법 가운데 하나 이상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야 한다.

첫째는 은유, 비교 혹은 비유의 목적을 지닌 것

둘째는 우리의 고찰, 판단, 이해, 인식 등의 방식에 맞게 말한 것

셋째는 서민의 생각과 보편적인 화법에 맞게 말한 것

성경은 우리의 이해 방식과 형세에 따라 우리를 고려해서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내용이 우리와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고방식에 맞게 묘사된다. 곧 지구는 멈춰있고 움직이지 않으며,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우리를 생각해서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투로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지구가 한가운데 단단히 고정된 상태에서 태양이 그 주위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 그 반대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0:12-13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입증한 것이 아닌가?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갈릴레오는 대공비 크리스티나께 드리는 서한에서 그러한 표현은 단지 보편적인 화법에 불과하다고 주장.

 

반대 의견

첫째, 성경은 단어들의 올바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둘째, 성경은 교황 성하 및 박학한 신학자들의 공통된 해석과 이해에 따라해석해야 한다.

 

가톨릭 전통의 불변성이라는 개념은 로마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티즘에 맞서는데 필수요소

 

J. B. 보쉬에(1627-1704)

교회의 가르침은 언제나 한결같다…….복음은 이전의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과거에 언급되지 않았던 뭔가가 신앙에 포함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이단, 곧 정통 교의에서 벗어난 것이다. 거짓된 교의는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언제 나타나든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니까…….”

 

지동설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

첫째, 30년 전쟁 때문에 가톨릭은 새로운 성서의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에 극도로 민감

성서의 새로운 해석의 용인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용인으로 이어질 위험성

루터의 종교개혁(1517), 30년 전쟁(16181648)이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얼마나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일인지를 생각해보라.

둘째, 천동설을 이길 만큼 지동설의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음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이는 빅뱅 이론도 처음 나왔을 때는 과학자들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결론, 지동설 천동설 논쟁의 교회의 어리석음뿐만 아니라 당시의 과학 지식의 한계도 한몫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