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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왕조시대 이스라엘

1. 왕정의 전주곡

by 에르고니아 202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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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경부터 1050년경까지의 기간은 후기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전기 철기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성서에서는 사사 시대입니다.

사사기(공동번역에서는 판관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혼란과 변질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버렸습니다(삿 2:17). 하나님은 회개하는 이들의 고통을 듣고 뜻을 돌이켜 그들을 다시 구원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다시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2:19).

되풀이되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타락은 여호와의 분노와 심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잠깐 동안의 회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피상적인 고백은 유효하지 않으며 확실한 회개는 이방신들이 실제로 제거되어야 합니다(10: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사사기의 위치

사사기는 사사들이 주인공인 책이지 사사들이 쓴 책은 아닙니다. 사사기라는 명칭은 히브리어 본문과 70인역본에 나오는 사사라는 칭호에서 따온 것입니다. 사사기는 가나안 정복과 왕정 확립 사이인 약 기원전 1200년에서 1050년으로, 전통적으로 사사’(판관)라고 불리는 족장이나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일부 사사들은 재판장 역할을 하였으나 대체로 사사들은 주변 나라나 사막으로부터 침입해 오는 유목민과 같은 대적과 싸워 이스라엘을 구하는 군사 지도자 역할을 합니다. 외경인 집회서는 사사들이 판관들은 그 하나하나가 높은 명성을 떨쳤고 그들은 모두 우상 숭배를 물리쳤고 주님께 등을 돌리지 않았다고 칭찬합니다(집회 46:11, 공동번역).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의 영웅들에 기드온과 바락, 삼손과 입다와 같은 사사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11:32).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5)는 출애굽기 15장과 함께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간주됩니다. 이 책에 있는 다른 자료들도 오랜 세월 동안 수집되고 기록된 것들로, 사사기는 전기 예언서로 구분되는 수집물에 포함되어 있는데 전기 예언서는 바벨론 포로 시기에 그 최종적인 편집 형태를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사기는 신명기 역사서(여호수아부터 열왕기서까지)의 관점을 공유합니다.

 

사사들의 통치 기간

사사들의 통치 기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사사

사건

기간

3:8

 

아람 나하라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억압

8

3:7-11

옷니엘/ 유다

아람으로부터 구원

40

 

 

모압 왕 에글론의 억압

18

3:12-30

에훗[각주:1]

/ 베냐민

모압으로부터 구원

80

3:31

삼갈[각주:2]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인 육백 명을 죽임

?

4:1-3

 

하솔 왕 야빈의 억압

20

4-5

드보라/에브라임

바락을 보내어 가나안 왕 야빈을 쳐부숨

40

6:1

 

미디안의 억압

7

6-8

기드온[각주:3]

/ 므낫세

미디안 족으로부터 구원

40

9:22

 

아비멜렉의 실패한 원정

3

10:1-2

돌라/ 잇사갈

잇사갈 지파의 돌라의 통치

23

10:3-5

야일/ 길르앗

길르앗의 야일 통치

22

10:6-9

 

암몬과 블레셋의 억압

18

12:6-12:7

입다/ 길르앗

암몬의 압제에 맞서 싸워 쳐부숨

6

12:8-10

입산/스불론? 유다?

아들 삼십, 딸 삼십을 둠

7

12:11-12

엘론/ 스불론

스불론의 사사 엘론의 통치

10

12:13-15

압돈/ 에브라임?

아들 삼십, 손자 삼십

8

13:1

 

블레셋의 억압

40

15:20

삼손[각주:4]

/

단 지파 삼손의 통치

20

숫자를 단순히 더한 기간(삼갈 제외)

410

 

사사 시대를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모두 410년이 되는데, 열왕기상 6:1과 비교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480년이 되는 해에 시작되었다면, 사사 시대의 410년을 뺀 70년 만에 가나안 정복, 제사장 엘리와 사무엘의 통치 등이 모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각주:5]

 

사건

기간

광야 생활

38(2:14), 40(14:33; 2:7)

가나안 정복[각주:6]

7, 5(14:7)

사사시대

410

제사장 엘리

40(삼상 4:18)

사무엘[각주:7]

12

사울[각주:8]

40?(13:21), 20?

다윗

40(삼하 5:4, 왕상 2:11)

솔로몬의 성전 건축

4(왕상 6:1)

여호수아, 장로들의 기간은 더하지 않는다

모두 더해서 593년 또는 591

 

단순 계산으로 나온 593/591년은 열왕기상 6:1480년보다 더 긴 기간으로, 13세기 출애굽 연대설은 물론 15세기 출애굽 연대설도 훨씬 뛰어넘게 됩니다.

 

이러한 계산은 사도행전 13:19-20을 비교해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여기에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무려 450년 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 사사시대가 시작됩니다(NIV도 같음). 그렇게 되면 사사시대 이전에 450년이라는 시간이 더해져서 열왕기상 6:1을 근거로 출애굽 후 480년이라는 기간과 전혀 맞지 않게 됩니다.

KJV의 경우 이러한 모순을 피하기 위해 사무엘 이전에 사사들의 기간을 450년 동안이라고 번역했습니다(13:20)[각주:9]

And after that he gave unto them judges about the space of four hundred and fifty years, until Samuel the prophet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사들의 통치 기간인 20, 40, 80년의 숫자들을 실제 통치 기간이 아닌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입니다. 옷니엘(3:11), 기드온(8:28), 사무엘(삼상 4:18), 사울(13:21), 다윗(삼하 5:4), 솔로몬(왕상 11:42), 요아스(왕하 12:1) 등은 40년 동안 다스렸습니다(또한 삿 5:31).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렸고(13:1)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40년 동안 벌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29:11-16).

또한 각 지파의 사사들의 통치 기간이 서로 겹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사기는 왕정 이전 시대의 상황이 배교, 환난, 회개, 평화 그리고 다시 배교로 이어지는 주기적인 반복의 양식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정리되고 편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사기의 신학

사사기의 신학 유형에 따른 이야기 배열구조는 아래와 같습니다(삿2:11-23; 3:7-17:21).

- 배교/ 야훼에게서 바알에게로 돌이킴

- 심판/ 야훼가 이웃나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압제하도록 허락함

- 회개/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자 야훼가 사사를 일으켜 구원

- 평화/ (다음 배교가 있기까지) 이스라엘의 평화

 

이러한 구조에서 성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야훼이즘이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입니다.

 

사사기를 통해서 왕정 시대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를 엿볼 수 있습니다.[각주:10]

첫째, 사사기를 구성하는 이야기들과 편집은 창세기-여호수아에서보다 훨씬 더 쉽게 개별 설화들을 구별해 낼 수 있다. 몇몇 사사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사로서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친다. 개별 이야기들이 창세기-열왕기하 편집자들의 정교한 역사관과 충돌한다는 사실은 그 설화들이 이전의 전승들을 보여준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둘째, 사사기의 기적 이야기는 창세기-여호수아서에 나오는 기적이나 이적 이야기보다 그 정도가 약하고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다.

셋째, 이 이야기들이 묘사하는 일반적인 사회문화적 상황은 주변 나라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철기 시대 초기의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

넷째, 이 이야기들에 반영되어 있는 상황은 사무엘서에 묘사되어 있는 이스라엘 왕정의 등장에 관하여 믿을만한 사회 배경을 제공한다.

 

따라서 사사기는 초기 이스라엘 지파들이 처한 일반적인 사회정치종교 상황에 대해 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 시대의 고고학

창세기부터 열왕기의 시각에 따르면 야훼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레위인들의 주도 아래 이루어집니다. 레위 지파는 가나안 민족의 종교 신념 및 관행들과 날카로운 대조를 보이는 야훼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겜과 실로는 열두 지파를 위한 중앙 성소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모세 율법과 계약을 주관합니다(8:30-35; 24). 여호수아 18:1을 보면 회막은 실로에 세웠고 실로는 지파의 정치 중심지였습니다(8:1; 21:1-2; 22:12).

하지만 사사기는 왕정 시대 이전 이스라엘 종교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이는 고고학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기드온

사사기 6-9장을 보면, 기드온의 아버지인 요아스(아비에셀 자손)오브라의 상수리나무가 나옵니다(6:11). ‘요아스’(야훼께서 주신다)라는 이름은 야훼 신앙을 보여주는데 기드온은 상수리나무에서 야훼의 천사(또는 야훼 자신)를 만나 고기, , 죽으로 된 제물을 바쳤습니다. 기드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6:24)라 지었습니다. 사사기 6:25-32에서 기드온은 아버지에게 속한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제거하고 야훼의 단을 쌓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반대하는데 아마도 바알의 단은 마을의 산당 역학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6:24). 그 뒤 기드온은 미디안 족을 이긴 뒤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성읍 오브라에 세웠습니다. 이 에봇이 나중에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8:27) 된 것으로 보아 이 에봇은 출애굽기 28:4에 나오는 제사장의 의복이 아니라 제의적 복장을 하고 있는 어떤 조각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수리 나무

다음에 나오는 아비멜렉 이야기에서는 아비멜렉은 오브라의 상수리나무 같은 신성한 장소였던 세겜에 있는 기둥 상수리나무’(9:6)에서 왕으로 등극하였습니다. 나중에 아비멜렉은 세겜을 공격할 때 ‘므오느님 상수리나무’(9:37) 쪽에서 접근하였고 사람들은 ‘엘브릿 신당의 보루’(‘계약의 엘’; 삿 9:46)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이렇게 상수리 나무는 일반적인 나무가 아닌 신성한 대상임을 암시합니다. 상수리 나무(히브리어 ‘엘론’)또는 여신을 어원으로 하고 있어서 신 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각주:11] 오크 나무(히브리어 엘론을 한글성경은 ‘상수리 나무’로 번역)는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 하부 갈릴리, 단 계곡, 훌라 평야, 골란 고원까지 넓은 지역에서 자랍니다. 건축자재와 배를 만들거나 각조 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으며, 높은 키와 긴 수명 그리고 나무의 단단함은 이 나무에 행운의 의미를 부여하여 종교적인 현상이나 제사와 관련되었습니다. 이집트 힉소스 왕조의 수도 아바리스(Avaris) 유적지에서 발견된 가나안 사람들의 신전 뜰에는 제단 하나와 함께 두 그루의 사철 푸른 오크 나무가 서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이집트로 옮겨와 심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창세기 13:18을 보면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미가 이야기

사사기 17-18장의 에브라임 사람 미가 이야기를 보면, 미가는 야훼에게 드린 은을 깎아 신상(야훼 신상?)을 만듭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가 나중에 유다 베들레헴의 한 레위인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레위인은 구체적으로 유다 지파(레위 지파가 아니라) 출신이었다고 하는데 이야기의 후반에 가면, 레위인은 그 목소리로 구별이 됩니다(18:3).

단 지파 사람들은 에브라임을 통과하면서 성물을 취하고 그 레위인에게 자신들의 제사장이 되어달라고 설득합니다(18:19). 그 뒤 단 지파의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된 이 레위인은 사사기 18:30에서 모세의 손자이자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그의 제사장 반열은 그 땅이 사로잡혀 갈 때까지 단에서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미가의 신상은 단의 성소에 있었습니다(18:31).

조셉 캘러웨이(Joseph A. Callaway)는 위와 같이 한 집안에 있는 신당에 관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제1철기 시대 가옥들을 키르벳 라다나(Khirbet Raddana)에서 발굴했습니다.[각주:12] 두 채의 집에서 큰 방에 있는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들 곁에 돌로 만들어진 작은 단()들이 있었습니다. 한 가옥에서는 두 점의 제기(祭器)가 발견되었습니다.[각주:13]

 

베냐민 지파

사사기 20:35, 44, 47에 나오는 베냐민 자손의 대학살의 범위는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베냐민 용사를 50,000명 살해하는데 이 숫자를 근거로 베냐민 자손의 전체 인구를 추산하면 200,000명입니다. 이는 남유다 히스기야 왕 때 산헤립의 3차 원정에 강제 이주된 사람의 총합(200,150)과 맞먹을 정도인데,[각주:14] 20세기 이전에 베냐민 지역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수치이니다. 이러한 수치는 역사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고 다만 이웃 베냐민 사람들을 향한 다른 지파들의 분노와 증오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50,000(기원전 12세기)에서 75,000(11세기) 정도였으며 솔로몬 시대에 100,000명으로 추정됩니다.

 

돼지뼈

기원전 12세기에 에발산, 실로, 키르벳 엣-다와라(Khirbet ed-Dawwara, 길갈?)에서 염소와 양의 뼈가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스라엘 지역에서 돼지 뼈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돼지를 키우는 것은 돈이 많이 든다는 생태학적 이유 때문에 금기시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정착하면서 산림지대가 벌채되어 자연 사료로 돼지를 기르기에 적합한 땅들은 제한되면서, 알곡식으로 돼지를 기르게 되어 인간들과 직접 경쟁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각주:15]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돼지 금기는 이스라엘인 고유의 가치관과 신앙만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될 수가 없다.......돼지들이 금기된 사실은 성서에 의한 금기가 고대국가 및 제국들의 발흥과 관련하여 생산 강화와 자원고갈이 몰고 오는 생태계의 거듭되는 변화에 대한 적응이자 광대한 지역에 걸쳐 값진 구실을 한 대응책이었던 것으로 보아야한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살던 고지대의 산지는 오크 나무(상수리 나무) 덕에 그늘이 많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를 돼지가 좋아했기 때문에 돼지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마빈 해리스의 주장과는 달리 문화적 이유, 특별히 할례를 받았으냐 안받았느냐의 차이, 그리고 음식으로 먹는 것을 금지한 이유였습니다. 이 차이는 두 민족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는 문화적 경제선 역할이었습니다. 철기 1시대에 블레셋 지역(아스글론, 미크네, 팀나-바타스)에서는 상당히 많은 돼지 뼈가 발견되었지만 블레셋과 가까운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돼지 뼈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각주:16]

 

다곤

블레셋의 신인 다곤(삼상 5:1-5)은 지중해 해안 지역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아람에서도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고고학 증거를 통하여 다곤이 기원전 제2 천년기 하반부 초반 시대부터 숭배 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고대 근동의 다른 백성들과 같이 신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끈다고 믿었습니다(4:1).

 

실로

실로(Shiloh, 오늘날 Tell Seilun)는 이스라엘 이전부터 제의 장소였습니다(18:31; 21:12, 19, 21 참조). 이곳에서 제의 그릇과 소, 양과 염소의 뼈가 발견되었습니다.[각주:17]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실로가 전성기를 맞은 시기는 11세기 전반이며 북 갈릴리, 브엘세바 계곡, 유대 고원지대에 막 정착하던 시기입니다. 잘 개발된 건축과 매우 발달된 설계의 흔적들은 실로의 영향력이 실로가 위치한 에브라임 지역을 넘어 베냐민과 므낫세 지역으로 확대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실로는 사무엘상 1장에 암시된 대로 범 부족적인 성소였을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12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전반까지 번성하였다가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황소 유적지(the Bull Site)

도단(Dothan)에서 동쪽으로 약 6.4킬로 떨어진 곳에 위한 황소 유적지가 있습니다. 도단은 요셉이 양 떼를 돌보는 형들을 찾아가 만난 곳이며 이곳에서 이집트로 팔려갑니다(37:17-20).

이스라엘 학자 아미하이 마자르(Amihai Mazar)가 발굴한 이곳은 언덕 위에 세워진 아주 작은 신당으로, 분명 일반 거주지는 아니고 유적물도 거의 없습니다.[각주:18] 여기에서 나온 도자기 파편을 보면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위를 둘러싼 돌들은 신당을 둘러싼 벽이었을 것입니다. 마자르는 자갈이 깔린 지역과 성경이 말하는 마쩨바(돌기둥)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황소 유적지에서 찾은 황소를 가나안 만신전 최고의 신 엘(El)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청동상이 사사기 6:32에서 기드온이 파괴한 바알의 동상과 같은 부류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기드온의 에봇, 드라빔, 사사기 17:4-5의 동상들과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12세기에서 기원하는 유일한 이스라엘의 신당인 이곳에서 숭배되던 주요 동물이 옛 가나안의 황소의 신 엘과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10센티 크기의 청동 황소와 비슷한 것이 하솔에서도 5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14세기의 것입니다.

 

하솔(Hazor)과 세겜(Shechem) 요새 신전

하솔은 11세기의 마을입니다.[각주:19] 청동 서원 헌물을 담은 한 항아리가 하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분향단, 화살촉, 포장 지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네 개의 돌기둥도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고깔모자를 쓰고 무기를 든 남자상도 있었습니다. 뱀을 가진 여신상은 하솔 석비 신전 도금 청동 받침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세겜의 신전은 사사기 9장의 바알-베리트/-베리트의 신전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세겜 성전에서 행해진 가나안 예배는 엘/바알-베리트(9:4 한글성경 ‘바알브릿 신전’)에 초점을 두었고 이 신은 사사기 8:33에 따르면 세겜 이외의 지역에서도 숭배되었습니다. 사사기 9:46의 엘-베리트(한글성경 ‘엘브릿 신전’)을 신에 대한 일반 명사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엘-베리트는 바알을 지칭할 것입니다. /바알-베리트 신전은 아비멜렉(9)에 의해 파괴됩니다. 그것은 세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세겜 요새 신전과 같은 것 일수 있습니다. 이 세겜 신전은 기원전 1100년경에 파괴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것은 그렇게 큰 종교 건축이 최초로 등장하는 경우입니다. 세겜도 다른 가나안 도시처럼 만신전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조각상과 쐐기 문서들은 잠정적으로 바알-베리트라는 말이 엘-베리트에 대한 별칭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비록 그 거주자들이 민족적 집단으로서 자신들 스스로를 한정하는 과정에 있던 것 같이 보이지만 중앙의 권력 집단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사기 17:6; 21:25와 일치합니다.[각주:20]

종교적으로는, 철기 1기의 언덕 지대에는 어떠한 성전들, 성소들 또는 산당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후기 청동기 시대 팔레스타인 지역에 신전이 많았던 것과 많이 대비됩니다. 에발산 꼭대기, 곧 세겜 지역에서 초기 이스라엘의 신당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격리된 농장이나 성채로 여깁니다.[각주:21]

 

고고학 발굴과 더불어 이러한 이야기의 해석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훼이즘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사사 당시 지파들의 종교에 관한 정보를 새롭게 간추려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씨족과 마을에서 행한 종교와 제의는 시리아-팔레스타인의 오래된 관습과 비슷하다.

둘째, 씨족들 가운데는 수많은 성소, 산당, 제단 등이 있었다. 단일한 중앙 성소는 보이지 않는다.

셋째, 레위 지파와 같이 단일한 제사장 지파가 제의를 독점적으로 주관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여러 제사장 가문들 사이에서 활발한 경쟁이 있었을 것이다.

넷째, 야훼이즘이 중요하기는 했지만 완전하게 뿌리내리지는 않았다.

 


 

  1. 왼손잡이 에훗은 베냐민 사람(오른손의 아들)이다. 에글론이란 이름은 히브리어의 ‘송아지’나 ‘살찐’과 발음이 같다. 에훗은 칼로 ‘찌르고’(3:21) 나팔을 ‘분다’(3:27). 이 두 동사는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말이다. 에훗이 ‘전하는 말’(3:19-20)은 문자적으로 ‘입’인데 그가 날 선 검으로 찌르는 것을 말한 것이다(3:16). [본문으로]
  2. 삼갈은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 다시 나타난다(5:6). ‘아낫의 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일부는 그를 벧 아낫(수 19:38) 성읍 출신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아낫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사의 여신 아낫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넓게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낫의 아들’을 군사적 명칭으로 생각하고 있다. [본문으로]
  3. 그의 이름은 여룹바알로 바뀌는데(6:32), 이 뜻은 ‘바알에게 그 자신을 지키게 하라’이다.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은 삼하 11:21에서는 ‘여룹베셋’(기드온)으로 기록되었다(삼하 2:8-11). [본문으로]
  4. 삼손의 이름은 ‘해’라는 말의 어근에서 유래했고 들릴라의 이름은 ‘밤’이라는 낱말과 발음이 비슷하다. [본문으로]
  5. Iain Provan, et al.,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3), 335. [본문으로]
  6. 여호수아 14:7, 10을 근거로, 갈렙이 정탐 사명을 시작한 때가(민 13:6) 40살이었고 헤브론을 유업으로 받을 때(수 14:10)가 85세라고 밝힌다. 갈렙의 정탐과 정복의 시작(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사이에 38년의 광야 생활이 있었다면 정복의 시작과 정복된 땅의 배분까지는 7년이 흘렀다. 만약 광야생활을 40년으로 본다면(민수기 32: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5년이 된다. [본문으로]
  7. 엘리의 죽음과 사울의 기름부음 사이에 사울의 사역기간은 성서가 언급하지 않는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언급에 따른 계산. Iain Provan, et al.,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3), 335. [본문으로]
  8. 사울의 통치 기간을 20년으로 보는 것은 Iain Provan, et al.,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3), 407. [본문으로]
  9. 사도행전 13:19-20의 해석에 관해서는 Bruce M. Metzger, 「신약 그리스어 본문 주석」, 장동수 역 (서울: 대한성서공회 성경원문연구소, 2005), 349. [본문으로]
  10. J. Maxwell Miller, John H. Hayes, 「고대이스라엘 역사」, 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97. [본문으로]
  11. Phillp J. King, Lawerence E. Stager, 「고대 이스라엘 문화」, 임미영 역 (서울: CLC, 2016), 165. [본문으로]
  12. Hershel Shanks et. al., 「고대이스라엘」, 김유기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5), 149. [본문으로]
  13. 사사시대의 제의와 관련해서는 Richard S. Hess, 「이스라엘의 종교」, 김구원 역 (서울: CLC, 2009), 284-292를 보라. [본문으로]
  14. James B. Pritchard, 「고대근동문학 선집」, 김구원 외 4인 역 (서울: CLC, 2016), 534. [본문으로]
  15. Marvin Harris, 「식인과 제왕」, 정도영 역 (서울: 한길사, 1995), 215. [본문으로]
  16. Phillp J. King, Lawerence E. Stager, 「고대 이스라엘 문화」, 임미영 역 (서울: CLC, 2016), 178. [본문으로]
  17. Richard S. Hess, 「이스라엘의 종교」, 김구원 역 (서울: CLC, 2009), 269. [본문으로]
  18. Hershel Shanks et. al., 「고대이스라엘의 기원」, 강승일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8), 60. [본문으로]
  19. Richard S. Hess, 「이스라엘의 종교」, 김구원 역 (서울: CLC, 2009), 289. [본문으로]
  20. William G. Dever, What Did the Biblicsl Writers Know and When Did They Know It?.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1. 113. [본문으로]
  21. Hershel Shanks et. al., 「고대이스라엘의 기원」, 강승일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8), 108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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