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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구약 일반

3. 저자와 권위

by 에르고니아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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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66권의 성서를 누가 기록했을까요?[각주:1] 여호수아서, 사무엘서, 예레미야서와 같이 제목이 저자를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성서에서는 기록자와 편집자의 정보를 알려줍니다.

-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잠언 25:1).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예레미야 36:4)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로마서 16:2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데살로니가후서 1:1)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베드로전서 5:12)

 

또한 성서들끼리 비슷한 구절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골로새서1/3에베소서와 병행을 이루고, 베드로후서유다서를 주의 깊게 읽어 보면 유다서의 25개 구절들 중에서 19개가 베드로후서와 병행을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병행구절들은 단어와 사상과 순서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는데 아마도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유다서를 자료로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성서 제목이 꼭 저자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서, 사무엘상하,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등과 같은 성서 저자를 암시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저자 개념이 아니라 주인공 개념으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곧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가 주인공이고, 이사야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주인공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첫 글자를 따서 창세기는 태초에’, 출애굽기는 이름은 이러하니’, 레위기는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 민수기는 광야에서’, 신명기는 말씀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뒤에’, 사무엘서는 한 남자가 있었다등입니다. 고대에는 저자의 개념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중요했습니다.

성서의 역사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성서의 기록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공격하지만 고대의 기록물을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성서의 이야기가 신에 대한 신앙 고백을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 역사성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해석이 반영되지 않은 객관적 역사 서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구슬을 실에 꿰듯이 단순한 사실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해 놓은 것이 아니다. 어떠한 해석도 배제한 채,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어떠한 역사 기록이든 선택과 해석의 과정을 거쳐 서술되기 마련이다."[각주:2]

 

오늘날에는 저자’(글쓴이)의 개념이 책의 권위와 맞물려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대 셈어계(히브리어를 비롯한 아람어 등)에서 저자는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바벨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 이집트의 난파선의 선원’, 신들의 싸움에 관한 가나안의 서사문학 바알과 못등에는 저자가 없습니다.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기록한 서기관이 있을 뿐입니다. 고대 히브리어에는 저자라는 낱말이 아예 없습니다. 가장 비슷한 말은 소페르인데 이 말은 저자라기보다는 그저 전통을 기록하여 전달하는 서기관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후에 알렉산더 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고대 근동 세계에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저자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이때부터 글의 권위가 저자와 밀접하게 연결 됩니다.[각주:3]

 

그러나 성서의 저자가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성서의 권위가 약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서를 예레미야가 직적 기록하지 않고 서기관 바룩이 기록했다고해서 예레미야서가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초기에 히브리서는 사도 바울의 편지로 알려졌었습니다. 어떤 파피루스 사본(P46)에는 히브리서가 바울의 기록인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입니. 하지만 오늘날에는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바울서신과 비교해서 메시지와 문체가 아주 다르며, 바울과는 달리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2:3-4).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성서에서 제외될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의 저작이라고 생각했었을 때나 익명의 저자로 밝혀졌을 때나 히브리서의 권위는 같습니다.

성서의 권위는 성서 본문의 내용 자체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대통령이 담화문을 준비하다고 해봅시다. 대통령이 담화문을 모두 직접 작성하지 않고 최종단계에서만 검토한다해도 그 담화문은 대통령이 작성한 것이며 그 내용 또한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것과 같습니다.

 

권위

성서의 권위는 그 내용 자체에 달려있습니다. 성서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임을 밝히 드러내주고 교회의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해줍니다. 성서는 하루아침에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경전의 분량과 순서가 다르며 성서가 되어가는 역사적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서의 저자가 명확해야만 성서의 권위가 명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에는 다양한 참고문헌들이 있었는데 성서 자체는 그 저자들이 활용할 수 있었던 여러 자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살의 책은 그러한 자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10:12-13). 성서 기록 가운데는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다윗의 조가(弔歌)도 포함되어 있으며(삼하 1:18), 다른 자료들로서는 여호와의 전쟁기’(21:14), ‘솔로몬의 실록’(왕상 11:41), ‘유다 왕 역대지략’(왕상 14:29),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 14:19), 호새의 사기(대하 33;19) 등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서와 열왕기는 이런 참고자료를 활용했던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결국 성서가 정경으로서 권위를 갖추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다양한 시각, 그리고 참고문헌 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서의 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교회 역사를 통해서 구약 성서의 정경 목록은 단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었으며 긴 시간 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물론 성서 원본은 무오하다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본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주장이 견고한 믿음의 고백 같지만, 그러다가 일점 또는 일획의 오류가 발견되면 어떠하겠습니까? 단 한 개의 오류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성경의 전체 권위가 무너져버리는 위험이 있습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일점일획의 오류 따위로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좋은 신앙입니다. 물론 이것이 성경은 오류투성이기에 믿을 만 한 것이 전혀 못 된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서는 충분히 역사적인 근거와 증거를 갖고 있으나 단지 성경의 본문을 글자 그대로해석하려는 시도는 조심해야 합니다. 성서의 권위는 약간의 오류와 실수에 의해 도전을 받을 정도로 허약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며 삶의 나침판이 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무오합니다. 곧 성서의 형식(글자나 문법, 내용 일부 등)에 있어서는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본질(의미와 목적)에 있어서는 전혀 오류가 없으며 완벽합니다.

 

다른 한편, 여러 학문들이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에 영향을 주거나 고대 근동의 신화와 비교 하는 것 등은 성서가 객관적인 역사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성서 본문과 주변 나라들의 역사를 비교해보면 조금 다른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는 성서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대전제가 무너져버리는 것으로 신앙의 뿌리가 뽑혀버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성서의 역사적 객관성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기록과 보존의 오래된 역사를 지니기에 그러한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성서를 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 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것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또한 여타 학문들이 성서의 역사성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1. 성서 저자에 관해서는 Richard Elliott Friedman, 「누가 성서를 기록했는가」, 이사야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8)을 보라. 프리드먼은 다윗 시대에 기록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William M. Schniedewind,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박정연 역 (서울: 에코리브르, 2006) 슈니더윈드는 성서가 ‘책’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본문으로]
  2. Bernhard W. Anderson, 「구약성서 탐구」, 김성천 역 (서울: CLC, 2017), 60. [본문으로]
  3. Bernhard W. Anderson, 「구약성서 탐구」, 김성천 역 (서울: CLC, 2017), 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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