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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구약 일반

5. 역사로서의 성서(1)

by 에르고니아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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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서의 성서를 이해하는데 조심해야할 주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서를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완벽한 역사책으로 읽는 시각입니다. 흔히 축자영감설이라 부르는 이런 시각은, 성서의 기록은 완전무결하기에 성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들은 완벽한 근거가 있으며 어떠한 역사적 오류나 실수조차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첫째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시각으로서, 성서는 역사적인 객관성이 결여된 기록이기에 전혀 믿을만하지 않다는 시각입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신앙적으로 편향되었으며 자기들의 민족과 하나님에게만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각을 적용하여 객관적인 사건을 주관적으로 곡해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시각을 살펴보고 마지막에 균형 잡힌 시각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성서 기록 시기에 대한 고찰

  • 대략 1200-800년에 알파벳 기록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용은 매우 제한적
  • 대략 800-722년에 고대 히브리어 문자 사용을 왕궁의 행정에서 강력하게 발전시킴. 사마리아의 오스트라카, 쿤틸레트 아즈루드의 글자, 키르베트 엘 콤의 비문과 아랏의 여러 오스트라카가 입증

722-587년에 고대 히브리어를 읽고 쓰는 능력이 유대 왕궁 해정의 모든 수준에서 곧 시민 행정과 군대에서 최고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농부와 기술공들 사이에 글 보급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각주:1]

어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기록된 글을 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분명하게 알파벳이 단순함이 촉진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축자영감설에 대한 오해

여호와가 성서의 저자에게 직접 수여한 것이며, 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사람은 이것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라는 일종의 축자영감설에 대한 오해는 조심해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1에서 사무엘은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아들인데, 역대상 6:1-28에 보면 레위 사람으로 되어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삼상 1:1)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대상 6:1)......그의 아들은 엘리압이요 그의 아들은 여로함이요 그의 아들은 엘가나라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라(대상 6:27-28)

사무엘상에서는 에브라임 지파, 역대상에서는 레위지파 사람으로 나옵니다. 사무엘은 어느 지파에 속하는 것일까요?

 

또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도 서로 다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삼상 17:4)......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삼상 17:50)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삼하 21:19)

-다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대상 20:5)

 

사무엘상 17장에서는 가장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21장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됩니다.

사무엘상 21:8-9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그리고 사무엘하 21:19과 역대상 20:5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문제는, 사무엘하 21:19에서 ‘~의 아우 라흐미는 원래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으며 한글 성경(개역개정)에만 있는 첨가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1:19 비교

(개역개정)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새번역) 또 곱에서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일어났다. 그 때에는 베들레헴 사람인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자루는 베틀 앞다리같이 굵었다.

(공동번역) 곱에서 불레셋 군과 또 한 차례 싸움이 붙었을 때 베들레헴 사람 야이르의 아들 엘하난이 갓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다.

(NIV) In another battle with the Philistines at Gob, Elhanan son of Jaare-Oregim the Bethlehemite killed Goliath the Gittite, who had a spear with a shaft like a weaver's rod.

곧 사무엘상 17장에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으나, 사무엘하 21:19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역대상에서는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7장과 역대상 20:5사이의 모순을 피하기 위해, 한글 성경(개역개정) 사무엘하 21:19에서는 ‘~의 아우 라흐미를 첨가하였는데, 원래 히브리어 본문에도 없는 것을 첨가한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원문대로 번역한 새번역에서는 첨가문이 없으며 영어 성경에서도 첨가문은 없습니다. 따라서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다윗인지 아니면 엘하난인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됩니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면

남유다의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 나이가 열왕기하에서는 18, 역대기하에서는 8세입니다.

열왕기하 24: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역대하 36:9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성서 원본에는 오류가 없다?

축자영감설의 또 다른 주장은 성서 원본에는 절대 오류가 없으며 단지 오랜 시간 동안 전승, 보존의 과정에서 사본 속에 약간의 오류가 첨가되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본은 찾을 수도 없고 찾는다 해도 어차피 지금까지 발견된 수천 개의 사본들과 비교 분석해야 합니다. 또한 원본이라는 것도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 적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특정 사람을 지목해서 정말로 일대일로 계시를 주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그 계시가 진실하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의 말만 듣고 참 계시라고 인정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성서를 보면 선지자들이 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의견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서, 4백 명쯤 되는 선지자들(왕상 22:6)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는데 선지자 미가야는 홀로 전쟁의 패배를 예언합니다.

예레미야 28장에서, 선지자 하나냐는 여호와가 바벨론 제국의 멍에를 꺾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언을 합니다(28:1-5). 그러나 곧이어 예레미야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유다 왕국이 포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28:6-9). 선지자 하나냐는 분노하여 예레미야의 나무 멍에를 빼앗아 꺾어 버립니다(예레미야 28:10). 남유다 왕국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냐와 멸망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 가운데 어느 것이 진정 여호와의 뜻이었을까요?

 

따라서 어떠한 예언(말씀)이 사실이나 진실로서 받아들여지려면 당시의 여러 상황과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난 뒤에야 가능해지며, 실제 그 예언의 성취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역사로서의 성서라는 말은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록되고 편집된 성서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검증되어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읽고 해석하고 받아들여진 문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허구일까?

둘째로 살펴볼 것은, 성서는 역사적인 객관성이 결여된 기록이기에 전혀 믿을만하지 않다는 시각에 대한 것입니다.

성서의 역사성을 전면 부정하는 사람들을 수정주의자라고 부릅니다. 수정주의자인 필립 R. 데이비스(Philip R. Davies)는 구약 성서의 역사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성서와 관련된 고고학 연구까지도 부정적으로 봅니다.[각주:2] 

성서적 이스라엘은 허구(fiction)이다......몇 몇 학자들에 의해 논쟁되는 텔 단 석비의 벳 다윗’(다윗의 집)의 해석에 관해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벳 다윗을 다윗의 집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옳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성서에서 말하는 영토의 크기를 통치했던 다윗 왕에 대한 성서의 묘사와 부합하는 역사적 인물의 존재를 확증해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데이비스는 텔 단 석비 자체가 당시의 발굴 감독이었던 아브라함 비란(Abraham Biran)에 의해서 심겨진 날조품이라고 의심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스기야 왕의 터널(열왕기하 20:2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역대하 32:3-4에 언급한 터널로 실제 발굴되었다)임을 확인하는 비문조차도 실제 히스기야 시대가 아닌 기원전 2세기 헬라시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금석학 전문가와 고문서 학자에 의해 히스기야 시대라고 규정한 것은 조작된 사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철기시대(기원전 1000년대)의 히브리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데, 이는 10-6세기의 것으로 정확하게 연대 설정을 할 수 있는 수천 개의 오스트라카(도자기 파편의 글자)나 돌로 된 비문, 새겨진 도자기 등과 같은 유물들의 존재를 무시해버리는 셈입니다.

 

닐스 피터 렘케(Niels Peter Lemche)는 구약 성서가 기원전 2세기에 만들어진(최종적으로 편집된 수준이 아니라) 선전 문구에 불과하기에, 역사로서가 아니라 문학 작품으로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각주:3] 

나는 그 어떠한 역사적인 가치도 구약의 역사서에는 남아있지 않다고 종종 주장하였었다. 달리 말해서, 어느 누구도 구약의 역사가들이 결국 역사적이라고 밝혀질 수 있는 그 무엇을 나타내고 있음을 금지할 수는 없다. 여호수아서를 창조한 저자는 아마도 이주 전승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승의 명확한 내용은 오늘날 복원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안심하고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는 저자가 무엇이 발생했을 수 있었는지 혹은 무엇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대중적인 전승을 한 조각의 문학적 허구로 바꾸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스라엘 초기 역사라는 엄청나게 많은 기술들 가운데 일부분이었다.”

 

렘케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3세기의 히브리어는 이미 너무나도 달라져서 히브리어 역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각주:4]  페르시아 시기에 히브리어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며 당시의 공용어는 아람어였으며, 히브리어 기록물의 개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습니다. 아람어는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일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모국어가 되었고 이는 에스라와 다니엘서의 많은 부분이 아람어로 기록되어있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했는데(나중에 칠십인역 성경 곧, LXX이라 부르게 된다), 히브리어를 일상용어로 사용하지 않았던 유대인 번역자들은 당대의 히브리어는 알았지만 훨씬 이전에 기록된 히브리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게 그 당시 사용되는 히브리어식으로 번역하게 됩니다. 따라서 히브리어의 변천 과정을 살펴볼 때 성서의 기록 시기를 페르시아 말기나 헬레니즘 시기로 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정주의자들은 성서가 이데올로기 문서이기 때문에 전혀 믿을 수 없는 하나의 문학 작품에 불과하며, 성서의 역사성을 뒷받침해주는 (성서)고고학 역시 날조되고 오류투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여러 학자들의 권위 있는 저작이나 의견들을 비꼬아 풍자하면서, 정작 실제 고고학 자료들은 매우 부분적으로만 인용할 뿐입니다. 성서의 역사성과 성서 고고학의 신뢰성을 강하게 부정하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책 지면을 채울 뿐, 도대체 어떤 이유와 근거로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만약 수정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성서 고고학이 사기에 가까운 조작이라면 자신들 스스로 고고학 발굴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열기와 흙투성이를 무릅쓰고 발굴해서 발표한 자료들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마음대로 가위질을 해대는 것은 진정한 학자로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성서에서 역사성을 분리하기?

또 다른 방법은, 성서의 내용과 역사적인(고고학적인) 연구 결과를 구별해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하드 하암은 그의 연구 논문 모세에서 고고학 진리와 역사 진리를 구별합니다. 그에 따르면 고고학적 진리는 과거를 재건하기 위하여 우리가 믿을만한 역사적 자료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역사적 진리는 역사를 형성하는 정신적 힘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기록된 역사의 공헌에 의해 형성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고고학적 진리가 또한 역사적 진리는 아닙니다. 역사적 진리는 인류의 사회생활을 형성하는 정신적 힘을 밝히 보여주는 것이며 다만 그것뿐입니다. 그 생활에 인지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는 사람은 누구나 실재의 역사적 인물입니다. 그의 존재는 역사적 진리입니다..[각주:5] 

모세라는 인물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그는 우리가 상상한 바와 같이 그러한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로써 이상적 모세의 역사적 실재를 실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세는 시내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 방랑했던 모든 광야에서도 수 천 년 동안 지도자였다.”

 

위의 의견처럼 고고학적 진리와 역사적 진리를 구분해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역사는 성서의 신뢰성을 확립하는데 필수입니다. 주관적인 성서 읽기를 통해 감동받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개인적인 감흥에 불과합니다. 학문과 학문, 종교와 종교의 비교우위를 객관적 사실에서 찾는 오늘날, 성서의 객관성은 핵심 요소입니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이 누구나 인정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만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성서의 역사성을 탐구하기에 앞서 이런 물음이 필요합니다. “완벽하게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 가능할까?”


사진 www.freepik.com/free-photos-vectors/winter">Winter

  1. André Lemaire, “고대 이스라엘과 초기 유대교의 학교와 교육” 「히브리 성경 연구」 (서울: CLC, 2018), 304. [본문으로]
  2. P. R. Davies, “What Separates a Minimalist from a Maximalist? Not Much”, 72. [본문으로]
  3. Niels Peter Lemche, "Is It Still Possible to Write a History of Ancient Israel?," V. Philips Long ed., Israel's Past in Present Research: Essays on Ancient Israelite Historiography (SBTS 7;Winnona Lake: Eisenbrauns, 1999), 391-414. [본문으로]
  4. William M. Schniedewind,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박정연 역 (서울: 에코리브르, 2006), 292. 슈니더윈드는 오경의 기록시기를 히스기야 왕 때로 잡다. 같은 책 141. [본문으로]
  5. Yairah Amit, 「역사와 이데올로기」, 장춘식 역 (서울: 배재대학교출판부, 2006), 13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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