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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초기 이스라엘

2. 창세기의 문학적 해석

by 에르고니아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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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창세기 1-3장은 신앙의 첫 관문이면서 수많은 영적 영감을 불어넣어줍니다. 우리의 관심은 문학이 사실과 의미를 구성하는데 사용하는 방법들입니다.

수잔 니디치의 해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각주:1]

 

창세기 1

창세기 1장은 히브리 사람에 의해 쓰인 히브리어로 된 성경에 보존되어 나타나는 고대 이스라엘(히브리 민족)의 전통 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무질서, 생명 없음, 혼돈, 어두움의 상태에서 질서 있고 생명력 넘치는 세상, 곧 지리적 경계가 생겨나고 생명체가 활동하는 세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1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언어적 특징은 각 날에 이루어진 창조의 성과가 일정한 형식을 거쳐 표현되면서 만들어내는 고도의 반복성입니다.

  • 하나님이 이르시되 ~있으라 하시니 ~이 있었고
  •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이 ~~이라 부르시고 ~~이라 부르시니라
  •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날이니라

이러한 상용구가 되풀이 되면서 창조주의 창조 작업을 혼동과 구별 짓습니다.

좋았더라는 후렴구는 인류의 역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절도, 폭력과 속임수의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편적인 선()을 강조합니다. 2,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는 모든 것을 뒤덮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가 깊은 어둠 속에 묻혀있는 상태로서, 창조주는 혼돈을 질서로, 어두움을 빛으로 만들어갑니다.

 

창세기 1:28은 사람이 다스리는 세계를 언급하며, 1:30은 생물이 식물을 먹이로 삼는 방식을 통해 식물계와 동물계가 생태계를 이루는 질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130)

 

1장은 매우 일관된 양식으로 구성되어 인상적인 아름다움이 넘칩니다. 일정한 구조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창조주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창조는 불가피하며 그 어떠한 방해물이나 존재도 창조의 작업을 막을 수 없다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거듭해서 좋다는 감탄의 외침으로 인해 피조 세계는 작고 미약한 피조물에서 시작해서 마침내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되는 인간의 창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 질서가 잡혀갑니다.

7일로 이루어진 한 주는 창조과정에서 중요한 뼈대입니다. 거룩한 일곱째 날에 의해서 구분되는 각 주는 세상이 창조되어 가는 양식을 따라 걷는 한 걸음 한걸음으로서 창조 세상에서 우연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승리-즉위 정형 양식을 따르는 에누마 엘리쉬나 다른 성경 이야기들처럼 갈등을 동력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라합이나 리워야단 혹은 파라오 같은 악한 존재가 도전할 수 있는 여지도 주지 않습니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의 강력한 창조 능력에 의해 물 흐르듯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형식 속에 창조 이야기는 혼돈에서 질서로 잔잔하게 흐릅니다.

창조주는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으며, 그의 능력에 대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창조주는 유일하고, 단일하고, 전능합니다.

 

 

창세기 2-3

1장과 비교하면 2-3장의 저자는 낙원 이야기를 포함해서 1장에 비해 질서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됩니다.[각주:2] 세상은 안개 낀 습지로부터 시작됩니다. 태곳적 안개와 물줄기가 땅에 물을 공급하는데 아직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땅이 혼돈으로 가득한 불모지 상태라는 것은 아직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농부의 등장을 예고합니다. 그래서 2-3장의 이야기에서는 사람이 맨 처음 만들어집니다. 창조주는 작은 세상인 동산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사람을 살게 합니다. 이어서 사람의 먹을거리를 공급하고 농사에 반드시 필요한 물의 공급원인 네 강이 땅을 가르며 흐릅니다.

2-3장의 창조주는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는 조각가이며, 동산을 가꾸고 그 안에 생명체를 키우는 농부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사람에게 필요한 음식을 금지 명령과 함께 공급하는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2:16-17)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의 돕는 배필을 만드는데, 남자의 또 다른 자아 또는 거울에 비친 피사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동등한 남녀 관계를 바탕으로 창조 때부터 공유한 인간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창세기 1:27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다는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25)는 지상낙원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묘사입니다.

많은 학자가 이 구절 속에서 성()의 정체성에 완전히 눈뜨기 이전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에 주목합니다.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상태는 사회적 책임감을 완전히 느끼는 시기 이전 상태, 곧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어른들의 사회 구조 속에서 기대되는 역할과 위치를 구별하는 시기 이전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가리킵니다. 이 시기가 인류에게 가장 행복한 순수의 시대임을 보여줍니다. 먹을 음식은 공급되며 사람이 입을 옷이나 먹을거리를 위해 동물이 희생되지도 않습니다. 이 동산 안에서 모든 생명은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남자와 여자도 특별히 맡은 역할이 없으며, 선과 악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생물학적 어린아이도 없습니다.

 

창세기 2-3장의 양식은 전반적으로 활기차며 청각적이며 멋들어진 말놀이(언어유희)를 보여줍니다. 25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벌거벗은이란 뜻의 히브리어 아룸밈은 동산에서 남자와 여자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묘사하는데 이 낱말은 창세기 3장을 여는 첫 번째 절에서 말놀이를 자아냅니다. 3장의 뱀은 가장 간교한데 이는 히브리어로 아룸입니다. 3:6에서 여자가 눈을 들어 보니 선악과 나무는 탐스럽기도 합니다(’레하스킬). 이 낱말은 바로 앞의 두 구절과 호응하는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알다란 낱말은 남녀의 성관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누구와 눕다라는 표현도 쓰기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들어가다라는 표현이 성관계를 뜻하는 말로 씁니다.[각주:3]

 

선악과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이들은 어른이 되는 대가로 모든 필요가 공급되는 낙원의 안락함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태초의 이상적 상황이 현실로 바뀌는 방식, 뱀과 여자와 남자, 창조주의 역할 그리고 먹는 행위가 지닌 상징적 기능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습니다. 창조주의 영역과 피조물인 사람의 영역이 겹치면서 이상과 현실이 충돌합니다. 뱀이 알고 있듯이, 생명나무는 하나님과 같아지게 되는 분별력(3:5, 22), 곧 하나님이 특별히 아끼시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하는 지식을 열매로 맺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낙원을 잃을 때 어느 정도 신적 존재가 됩니다. 그것은 아킬레스를 비롯한 여러 영웅같이, 모험으로 가득하나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마는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던 문제아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낙원에서의 삶은 노동, 출산, 계급 그리고 지식과는 상관없으며, 그 안에 머물렀다면 영생의 기회가 계속해서 유효했을지도 모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낙원과 함께 그 속에서 누리던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곧 남녀의 역할 분담, 적은 소득이라도 얻기 위해 땅을 일구는 노동, 출산의 고통, 남자-여자-뱀 순서의 계급 제도, , 지식의 탄생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과 악 그리고 죽음을 뜻합니다. 창조주가 만든 동산 밖의 삶은 그렇게 분열됩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해석하지 않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지성을 가진 인간이 첫째, 둘째, 셋째 날 및 저녁과 아침이 해와 달과 별 없이도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우리가 첫째 날이라고 부르는 그날이 과연 하늘 없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농부들이 하듯이 그렇게 "에덴의 동쪽에 정원을 세웠다"라는 말이나 눈에 보이는 '생명나무'를 그 안에 심었다는 말을 우리 가운데 어떤 바보가 믿겠는가?…….나는 이것들이 비유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 표현들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유사성을 통해 어떤 신비를 드러내준다.” -오리게네스(185-254년 경)[각주:4]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우구스티누스(354-430)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어떤 종류의 날인지를 이해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나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내 능력이 닿는 한 다양한 방법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말들을 연구하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 사고를 자극할 목적으로 모호하게 쓰인 단어를 해석할 때는 나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경쟁자의 해석을 뿌리치고 무모하게 내 입장만을 고수하지는 않았다

 

  1. Susan Niditch, 고대 이스라엘 문화와 구약성경, 곽계일 역 (서울: CLC, 2015), 66. [본문으로]
  2. Susan Niditch, 고대 이스라엘 문화와 구약성경, 곽계일 역 (서울: CLC, 2015), 71. [본문으로]
  3. Robert B. Coote, 성서의 처음 역사, 우택주 외 역 (서울: 한울아카데미, 2017), 104. [본문으로]
  4. J Daryl Charles, 창세기 기사 논쟁: 복음주의자들의 대화. 최정호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32-3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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