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시대
양극화/polarization, 둘 이상의 물체, 사람 또는 집단이 서로 상반되는 경향으로 분리되는 현상.
정치의 양극화
좌우의 대립, 기호 1번과 기호 2번의 대립,
지역에 따른 정치 대립, 정치 신인이 기존 정치계에 가입하기가 어려움, 정치인의 세습화와 양극화
세대의 양극화
부모 세대와 자녀세대의 대화의 어려움, 서로 다른 문화의 이해 어려움, 부모 세대의 고생담을 자녀에게 강요, ‘아버지가 옛날에는~ 요즘 애들은 고생을 너무 모른다’는 대화
노인 증가, 아기 감소/ 2014년 지난해 9월 국내 1호 유아복 업체인 아가방 컴퍼니는 중국 랑시그룹에 매각됐다.
아기용품. 분유 젖병 등 광고의 소멸. 노후대비와 관련된 보험 등 강세.
문화의 양극화
영화 ‘국제 시장’과 ‘변호인’, 인터넷 사이트의 양극화, 언어의 양극화, 아파트와 비아파트,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도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문화(옷, 음식, 여가 생활 등)의 격차로 끼리끼리 노는 문화
종교 양극화
IS,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이슬람과 서유럽의 대립, 종교에 따른 갈등
경제 양극화
2015년 제45회 다보스포럼을 앞두고 전 세계 상위 1%의 재산이 나머지 99%를 합친 것보다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의 위니 바니아 총장은 19일(현지시간) "부유층과 빈곤층간 격차가 빠른 속도로 커져 상위 1%가 전 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44%에서 2014년 48%로, 2016년에는 5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2013년 말 기준으로 3000만 달러(약 306억원) 이상 자산가는 전 세계에 16만7669명이 분포해 있다. 이는 지난해(16만2968명)보다 3% 늘었고 10년 전인 2003년(10만5641명)과 비교하면 무려 59% 증가한 수치다.
미국
“1984년 10배 → 2009년 47배”
미국의 청장년층과 고령층 간의 자산규모 차이가 2009년 47배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지난 1984년 고령층과 청장년층 간의 부의 차이는 약 10배가량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제도는 한국의 전세 제도와 의료 보험제도. 우리나라가 점점 미국의 월세제도를 따라가고, 국민의료 보험을 버리고 의료 민영화를 하고 있다.
미국은 모든 것이 월세로 월급이 잠깐이라도 중단되면 그대로 홈리스가 된다.
미국 경제위기로 뉴욕에만 2002년 3만천명에서, 현재 6만여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영화 ‘마진 콜’이나 ‘더 컴퍼니 맨’ 미국 경제의 속살을 보여주는 영화
중국
0.4%가 국가 자산의 70% 소유. 중국 부의 91%를 공산당의 고관들이 차지.
예수 시대의 양극화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도 양극화는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의 양극화였다.
역사와 문화의 양극화/사마리아와 유대
[눅 9:52] 109쪽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배척을 받으셨으나 그들과 화해하기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이다.
[눅 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유대인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도 만난 사람을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주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나쁜 일이었다. 서로 말도 석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니!
하지만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참 이웃이 되는 길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시고 이제는 사마리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신다.
[눅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예수님의 행적을 눈여겨보자. 그분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신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곧 유대인의 갈등의 경계선을 예수님이 걷고 있다. 자석의 n과 s극과 같이 절대로 친해질 수 없수 없는 두 지역의 경계를 예수님께서 직접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눅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한 마을에서 나병 환자 10명이 고침을 받았는데, 그중에 사마리아 사람만 감사인사를 드린다.
누가복음 9장에서 사마리아 마을에서 예수님이 배척을 받고, 화가 난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망시키기를 원했었는데, 17장에 이르러는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인 예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누가복음 17:20-21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림신 산에 사마리아 성전을 지어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곧 너희의 마음이 아닌, 너희 마을이 아닌, 너희의 관계 속에서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경제의 양극화/삭개오
예수님 시대에 또 하나의 양극화가 있었다. 바로 경제적인 양극화였다. 우리도 요즘 경제 민주화, 비정규직, 빈부격차 등등 경제적인 양극화로 고통받는다.
1. [눅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2. [눅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 시대에 세리는 비난의 상징이었다. 지금이야 제도적으로 정착이 된 세무 공무원이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주요 도로에 있었는데 상업의 중심지였기에 세리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다.
그래서 2절에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고 적고 있으며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집에 가셔서 식사를 하신다.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경제적으로 부자인 삭개오,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셨다. 사람들은 수근거렸지만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3. [눅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물위를 걷는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눈먼자를 보게하는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을 착취하던 삭개오가 자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은 4배로 갚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마도 삭개오는 파산했을 것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정치의 양극화/백부장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이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은 로마로부터의 독립이었다. 그들은 무력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에 의해 로마를 멸망시키고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 예수님 이전에 많은 이들이 로마를 향해 무력 투쟁을 벌였고, 예수님이 활동 하던 때에도 예수님의 제자로 열심당원 곧 무력을 써서 독립을 이루려는 이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눅 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서북쪽 해안에 있는 도시로 요단 강이 이 도시의 서쪽으로 흘러 들어간다.
백부장은 100명의 로마 정규군을 지휘하는 로마 군인 장교이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인, 곧 로마 시민권을 갖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로마 백부장이었다.
전투 부대의 군단의 규율과 전투 능력은 백부장들에게 달려있었으며 일반 병사들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였다. 명성, 높은 월급, 퇴역후의 후한 상여금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보장 받는 자리가 백부장이었다.
35. [눅 7: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런 백부장이 예수님을 만난다. 그의 믿음은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중에서도 보지 못했던 큰 믿음이었다고 예수님이 찬탄해 마지않는다.
36. [눅 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백부장은 사형을 집행하는 군인들을 총괄하는 임무였는데 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백부장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나선다.
[행 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38. [행 10: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사울이 회심을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어 바울로 이름을 고쳤는데, 사울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 바로 백부장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게 된 사건이다.
예수 시대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원했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묻자. 왜 예수님은 사회, 경제, 정치의 양극화에 무관심한 듯한 행동을 보였을까? 제자들이 그렇게 원했던 로마로부터의 독립, 하나님의 나라의 오심에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셨는가?
천사들을 동원해서 로마인을 싹 쓸어버리고, 백성들의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배부른 부자들을 엄하게 징벌하는 것이 진정한 구세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비록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의 주범들에게도 준엄한 꾸짖음을 하셨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는 길을 보여주셨다. 그들과 교제하고 대화하심으로 그들을 감동시키셨다. 그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을 감싸안고 변화시켰다.
사마리아/ 문화의 양극화, 역사의 양극화.
세리 삭개오/ 경제적 양극화
로마 백부장/정치적 양극화
성령의 오심
사도행전 2:1-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내 자존심, 지식을 불태워버리는 성령, 미움과 갈등을 불태워버리는 성령, 내 알량한 자존심을 불태워버리는 성령의 능력이 한국 교회에 가득차게 되면 한국 사회는 참으로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부부끼리 부모와 자녀끼리 갈등이 생길 때마다 속으로 기도하라. ‘성령님 저를 불살라주십시오. 저의 분노를 저의 욕심을 불사라 주십시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누군가 미운 사람들이 생기고 분노가 쌓여서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성령님 성령의 충만함으로 내 영혼을 채우소서’
성령님에 의해 새로운 사람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집단이 생겨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5.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예수님과 성령님은 새로운 종족을 만드셨다. 그것은 로마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니었다. 사마리아인도 아니고 부자도, 세리도, 여자도, 바리새인도 아니고 심지어 의인도 죄인도 아니었다.
새 인류의 탄생, 그리스도인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한다.
성령의 용광로, 교회
그러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내 자존심, 지식을 불태워버리는 성령, 미움과 갈등을 불태워버리는 성령, 내 알량한 자존심을 불태워버리는 성령의 능력이 한국 교회에 가득차게 되면 한국 사회는 참으로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부부끼리 부모와 자녀끼리 갈등이 생길때마다 속으로 기도하라. 성령님 저를 불살라주십시오. 저의 분노를 저의 욕심을 불사라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에 의해 하나가 된다. 성령 충만함은 내 마음을 녹이고 언어를 녹이고 영혼을 녹인다. 미움을 녹이고 계층과 차별을 녹인다.
성령으로 녹아내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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