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첫 번째 예고
마 2:1-2
예루살렘/ 왕의 궁전이 있는 곳, 권력과 영광의 도시.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당연히 유대인의 왕이 예루살렘에서 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방문. 당시 왕인 헤롯 대왕이 놀라며 메시야의 탄생을 살육으로 막으려 함.
마 16:21
예루살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맏고 죽음을 당하는 장소로 예고하심. 동시에 부활의 장소.
베드로/ 예루살렘 입성의 영광의 입성으로 기대. 지방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그 힘으로 왕으로 적어도 유명한 세력가가 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였으나 예수의 죽음을 예언하심을 막으려 함.
이때로부터
예수님이 자신이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세 번 예언(17:22-23; 20:17-19) 가운데 첫 번째 예고
이 고난 예언은 오직 제자들에게만 주어진다.
21 이때로부터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에 위치시키는 이 지점은 베드로의 고백에서 시작된다(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4)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병고침이나 가르침, 그리고 여러 기적이 계속 이어지기는 하지만 더 이상 관심의 초점이 아니다. 이때로부터 초점은 예수님의 고난과 수난이었다.
기적을 맛보고, 병고침을 받은 이들은 수많은 군중들이었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제자들에게는 특별한 고난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의 기적에만 관심이 있는가? 영광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수많은 군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예수님과 함께 기꺼이 십자가를 지려는가? 그렇다면 나는 주님의 참 제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듣기에 앞서 메시야로서 예수님의 신분이 그들의 확고하게 새겨져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베드로가 한 것과 같은 신앙 고백이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시몬 베드로의 고백은 훌륭하고도 탁월한 신앙 고백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를 통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다.
16:17-18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5)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6)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참으로 애석하게도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깨닫지 못했다. 그의 신앙 고백 속에는 여전히 세상의 자랑과 복을 받는 것이 가득차 있었다. 예수님의 고난 예고에 베드로의 반응을 보라.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제자들이 생각했던 메시야, 메시야 시대의 여명에 대해 마음 속에 품었던 기대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당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메시야는 영광과 권세와 찬란한 칭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참 메시야는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했다.
베드로는 꾸짖음을 당한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
죽음과 고난은 예수님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제자들, 기적을 체험한 군중들의 매정한 배신은 예수님도 견디기 힘드셨다.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누가복음 22:43-44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고난이 기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는 천사들도 힘을 보태야 했고, 그분의 기도는 땀이 땅에 떨어져 핏방울 같이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의 큰 싸움을 견뎌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고난을 우리를 뒤로 도망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군대를 제대한 사람이 다시 입대하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일까요?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
우리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자기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사람의 일은 십자가가 아닌 칭찬과 자랑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은 자기 목숨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먹고 마시는 것에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잃을 각오로 모든 삶을 담대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16:24-25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조심해야 할 고난
그런데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고난이라고 모두 예수님을 따르는 고난, 십자가의 고난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사실 우리가 겪는 고난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기 생각, 자기 성품, 자기 고집, 자기 가치관 때문에 겪는 고난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런 고난들은 마치 칼등으로 음식을 써는 것처럼 힘은 힘대로 들지만, 결과는 결과대로 보잘 것 없게 됩니다. 칼등으로 하는 칼질은 내 손도 다치고 음식 재료도 뭉개져서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고난은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고난입니까? 아니면 내 고집대로 성격대로 하다가 겪는 것입니까?
혹시 내가 겪는 고난 가운데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 때문에 겪는 고난이 있지는 않은지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님의 수난도, 제자의 길도 아닙니다. 그저 내 고집불통으로 인해 생기는 불필요한 혼란일 뿐이다.
고난 뒤의 축복
그렇다면 우리는 고난만 받다가 끝나게 될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을 받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도 말씀하셨다.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저 막연하게 고난만 받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셨듯이 제자들인 우리도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온 천하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제 목숨을 얻을 것인가? 여기서 목숨은 헬라어로 ‘프슈케’이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 이상의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 곧 프슈케를 버리고 온 천하를 얻으려는 행동을 한다. 인간의 존재의 최고 가치인 생명을 돈과 명예와 물질과 사회적인 지위와 맞바꾸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기 모순이고 자가당착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이 없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자존심도 던져버린다. 생명을 돈과 물질로 바꾸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마 4:8-10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듯 우리를 시험한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에 눈을 멀게 만들어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이익을, 하나님을 일보다 사람의 일을 우선하게 만든다.
교회가 비난을 받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 결국은 제 생명을 버리고 온 천하를 얻고자 하는 어리석은 행동에서 오는 것이다.
지극히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 휘황찬란함에 눈이 어두워져 사탄에게 엎드려 경배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다.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아버지의 영광으로
우리가 온전히 제자의 길을 걷는 것, 십자가를 지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 곧 재림이고 종말이고 죽음 이후의 천국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우리는 내 삶을 마치고 주님을 뵙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가 행한 대로 보답을 받을 것이다.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갈라디아서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로마서 8:16-18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제자도는 십자가의 길이다. 역설적으로 제자도에서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얻을 것이나,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은 생명을 잃을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우선 순위를 다시 정하라는 주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은 세상적으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생명을 찾는 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세상적인 명예와 부유함이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승리와 영광이 예수님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제자들 곧 우리들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하듯이, 예수님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잃는 위험도 감수하듯이, 하나님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도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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